일이 많아지는 이유와 그 과정
가끔은 일이 많아서 벅찰 때가 있다. 번아웃이 오는 건 발전의 계기라고 쳐도, 자꾸만 반복해서 찾아오는 번아웃은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왜, 도대체 왜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틈틈히 작성해본 일이 많아지는 이유.
단순히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서 '일이 많아지는 이유'를 알게 되면 조금 더 나은 방법을,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그레이존 (일과 일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일들이 혼재되는 구간) 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1. 데드라인이 있는 일이 생김
삶이란 참으로도 번잡스럽고 소란스럽지만 데드라인(마감 일정)이 잡힌 일로 인해 활력을 찾기도 한다. 갑자기 생산에 문제나 사고가 터진 경우가 그렇다. 일정상의 긴급성을 요하는 일 덕에 계획에도 없던 일이 생기면 일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2. 시간이 없어서 해본 친구한티 맡김
해봤어?
이런 질문을 근래 들어 많이 듣지는 않지만 질문자의 요지는 "해봤으면 너가 해볼까" 일수도 있다. "안해봤다"라고 답하면 "한 번 해봐"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3. 잘해서 빨리 끝남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잘했거나 못했거나 상관없이, 운이 좋아서 쉽게 끝났을 수도 있다. 금방 끝난 일은 또 다른 일을 몰고 온다.
4. 또 다른 급한일이 생김
이제부터 제대로 된 반복의 시작이다. 다시 급한 일이 생기지만 1번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 급한 일이다. 다시 시작해본다.
5. 다시 그 친구한테 맡김
그거 해봤지?
그렇다. 같은 업무를 긴급히 해결한게 아니라도 상관 없다. 이미 진작에 일을 제대로 처리해냈으므로 다시 맡길 요량으로 일을 맡게 된다.
6. 잘해서 빨리 끝남
야근을 하며 끝내놨지만 그 일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다. 일이 끝났으므로.
7.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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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반복적으로 많은데 이것이 단순 잡무가 많은 것이라면 좋지 않은 신호다. 중요도가 높은 것을 자율적으로 해보라고 하면 잘하는 부분도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잡무가 손버릇처럼(그러니까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 등의 간단한 일처럼) 해결되는 일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에게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은 번아웃이 쉽게 오는 새로운 방법일 수 있다.
중요도가 높은 일도 문제 없이 해결해내니 쉽고 단순한 일을 잘할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는 반복적이고 머리를 쓰지 않는 일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회사에서도 소모품으로 보는 것 같다, 호구같이 대한다 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맞는 얘기다. 가끔 블로그에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을 보면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단순하고 쉬운 업무를 반복하는 것은 회사에서 키우기보다, 경쟁 상대로 느끼는 간접일 수도 있으니 판단을 잘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회사 차원에서야 직원에게 주는 일로 모든 것이 해결되면 "적당히 써먹자", "더 써먹자". "이정도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회사나 직원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님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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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잠깐 샜다.
위에서 그레이 존을 찾아보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글을 쓰면서 나는 굉장히 많은, (좋은 소식인걸까) 그레이 존을 발견하게 되었다. 반복적인 업무 속에도 이미 상대에게 번아웃이 왔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래서 전체적인 상황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상대에게 번아웃이 왔다면, 그게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상관없이 앞으로의 직장생활은 그리 편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겠지.
일처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반복적인 업무가 지속되는 건, 중간에서 누군가가 그 순간을 꼬집어 정리해주지 않으면 정리되거나 개선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사람의 몫이므로, 충분한 인력과 시간이 없다면 항상 발생할 가능성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일이 많다고 하면, 사람들이 적어서 발생하는 문제일수도 있고 많아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조직 상황에서 오는 문제일 수도 있다. 바쁜 와중에도, 바쁘고 정신없음에도 항상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 정신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이던 나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건 쉽지 않으므로 굳건한 의지와 행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의 제약으로 바꿀 수 없다면, 그리고 잡다한 업무로 인해 반복적인 번아웃이 온다면, 한 번 제대로 생각해보자. 무얼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