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상하게도
명확한 상처보다 애매한 관계에 더 오래 흔들린다.
대놓고 싫다고 말하면 차라리 쉽다.
선을 긋고 멀어지면 된다.
그런데 어떤 관계는
웃고 있고,
대화도 하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어렵다.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만
끝내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가까이 두는 것 같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묘하게 밖에 세워두는 태도.
설명하기 힘든 거리감은
사람을 오래 지치게 만든다.
누군가는 말한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주관적인 거니까.
그런데 사람은 결국 안다.
내가 편안한 관계 안에 있는지,
아니면 계속 긴장하며 존재하고 있는지를.
말 한마디를 고르게 되고,
표정을 먼저 읽게 되고,
괜히 내가 잘못했나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가장 피곤한 건
무언가가 명확히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화를 내기도 애매하고,
서운함을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넘기자니 마음 한켠에 계속 남는다.
관계 속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소모시키는 건
큰 다툼보다도
이런 애매한 긴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다.
내가 원래 이렇게 눈치를 많이 보던 사람이었나.
이렇게까지 말의 의도를 계산하던 사람이었나.
이렇게 쉽게 긴장하는 사람이었나.
싫어도 좋아도
사람은 결국 곁에 오래 있는 사람의 공기를 닮아간다.
말투를 닮고,
분위기를 닮고,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닮고,
심지어는 상처받는 방식까지 닮아간다.
그래서 더 무섭다.
어떤 관계는
내 삶에 큰 사건 하나 남기지 않아도
천천히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부분
아주 조용하게 시작된다.
웃는 횟수가 줄어들고,
설명하는 걸 포기하게 되고,
마음속에서 “괜찮다”보다
“글쎄”라는 말이 늘어난다.
오래 머문 공기의 냄새가 몸에 배듯,
사람도 결국 자신이 오래 있던 관계의 결을 닮아간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좋은 관계란
나를 계속 긴장시키는 관계가 아니라,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관계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