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편하게, 그리고 제대로 잘 살고 싶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생각의 변화는 없다. 그런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 쯤엔 꼭 한 번씩 사건, 사고가 터진다. 심한 말을 들은 건 나인데 오히려 화를 당하거나 분풀이를 당하고, 스스로 높은 사람이라 표현하고 싶음인지 갑자기 앞에 있음에도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반어법) 세상은 참 살 만하다. 매번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로운 도전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폭발 시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방향 시선이다.
폭발 시선
사건 하나가 하나의 뭉치로 발현되는 시선이다. 한 개의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문제들과 혼합하여 폭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인데 이는 주제를 찾지 못하게 하며 감정적인 불씨가 타올라 해결하기가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커피를 사는 김에 상대편 것도 같이 샀지만, 의향 없이 사왔다는 이유를 들며 기껏 생각해서 사온 빵까지 모욕하는 경우다. 커피를 마시겠냐는 의향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인데, 내가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라떼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이스가 아니라 핫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먹지 못하는 올리브가 있는 빵을 사온 경우에는 더욱 불쾌함이 절정에 치닫는데 툭 한마디 던져놓고 화를 낸 사람은 스스로의 자리에 돌아가고 만다. 호의에서 시작된 아메리카노는 올리브가 올려져있는 빵까지 전파되었다. 호의를 베푼 사람이 상대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선의에서 시작한 일은 악의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일방향 시선
사건 하나에 한 개의 불만만 제기되는 시선이다. 이 경우에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바쁘고 각박한 생활에서 쓸데없다 느껴지는 방식일 수 있다.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효율과 성과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데 일방향 시선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한게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런데 삶을 살아가다보면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 자주 생기고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상황도 자주 발생된다. 스스로의 입장만 바라보고, 스스로의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 아닐까 싶다.
한 때는 ‘폭발 시선’처럼 한 번에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그렇게 사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깨달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며 나의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생각은 한 번에 하나씩 이 좋은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사소한 하나의 벌벌 떨고 남 탓하며 사는게 좋을지, 아니면 크게 게의치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지는 각자의 몫이며 그들의 선택이다. 손가락이 다치는 것은 신경쓸 일이지만 손에 난 작은 상처 하나로 내가 죽지는 않을까 고민하는건 어리석은 일이다. 당뇨와 같은 합병증이 없다면 당연히.
때때로,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작은 소통을 통해 화합을 구현하는 것.
나의 단점을 보여주고 말 수를 줄이는 대신 소속감을 높이는 것.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 집이라는 둥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마도 내가,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아직도 내가 소외된 느낌을 느끼면 당황하거나 의기소침해져서 내성적인 모습을 스스로, 자주 보기 때문에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싫을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하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건 지금 이 순간도 살아있다는 반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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