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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읽음 : <베테랑의 몸> 그들이 스스로에게 가진 "자기 확신"의 힘.

올라씨 Elena._. 2024. 1. 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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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글 희정

사진 최형락 

펴낸이 이상훈

펴낸 곳 (주)한겨레엔

2023년 9월 20일 전자책 발행

2023년 12월 읽음.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2024년이 새로운 마음일 것이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좌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2023년의 연말을 맞이한 내 기분과 느낌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2024년의 새해에 이 책의 리뷰를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

  베테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0년 넘게 한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해보자면, 나는 베테랑이 아니었다. 경험치로 쌓인 업무가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함께 일하는 직장인들과의 관계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내 스스로를 내가 보았을 때 '베테랑'이라는 단어는 가당치도 않았다. 

 

  그럼에도 선뜻 이 책을 고르지 못한 이유는 '에세이'라는 카테고리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책이라는 건 장문의 글로 이뤄져 있어야 읽은 후의 뿌듯함도 남지 않겠는가. 하지만 <베테랑의 몸>이라는 제목이 나를 휘어잡아서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이 전자책을 무의식적인[!] 손의 힘으로 구매하고야 말았다. 

 

 

 
베테랑의 몸
일이란 내게 무엇인가. 불안한 노동시장과 경기 침체로 자발적 퇴사·사이드 잡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각자도생의 시대, 때로 일은 그저 돈 버는 수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은 늘 그 이상이다. 수면 리듬이 출근 시간에 맞춰지고, 일할 때의 자세 때문에 퇴근 후에도 몸이 뻐근하다. 업무 용어는 입버릇처럼 혀끝에 맴돌고, 인간관계나 관심사도 일터에 맞게 바뀐다. 좋든 싫든, 일은 내게 들러붙어 있다. 어느덧 나는 조금씩 나의 일로부터 빚어진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간 일을 몸에 붙여온 이들이 있다. 한자리에 붙박여 같은 일을 해온 숙련자들을 우리는 ‘베테랑’이라 부른다. 이들이 베테랑이 되기까지 일을 반복하며 갈고닦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몸은 인내하며 버틴 시간과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12쪽)가 된다. 《베테랑의 몸》은 스스로 단련하는 시간 동안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체화된 기술과 일이 빚어낸 베테랑의 ‘몸’들을 드러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사회문제에 맞서고 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꾸준히 포착해온 기록노동자 희정은, 서로 다른 성별·연령·분야의 베테랑 13인을 만나 인터뷰하며 몸-일-일터-사회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풀어낸다. 저자는 뾰족한 문제의식과 세밀하고도 담담한 문장으로 질병·체형·자세·표정 등 몸의 변형은 물론, 어투·걸음걸이 등의 습관과 일의 태도까지 독자에게 꺼내어 보인다. 여기에 온빛사진상(사회의 생활상과 사건을 충실히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사진 상)을 두 차례 수상한 사진작가 최형락이 고유한 시선으로 베테랑의 모습을 담아내며, 일하는 몸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직업적 특징과 성격적 면모, 생의 굴곡에 따라 저마다 달리 다듬어진 베테랑의 몸들은 텍스트와 사진 이미지를 통해 더욱 풍부한 맥락 속에서 독자에게 다가간다. 이른 아침 작업장, 주방, 목욕탕, 출산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성실은 성실하게 몸에 새겨진다. (중략) 통증이 자세를 만들고, 자세는 체형을 만든다. 반복된 행동은 버릇과 습관으로 남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뱃심 든든한 몸통, 짙게 그을린 피부, 딴딴한 장딴지, 표정이 다채로운 얼굴, 짧게 다듬어진 손톱, 갈라진 발바닥, 우렁찬 목청, 청력 낮은 귀는 자신의 것이 된다. 젊은 시절, 아직 노동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몸을 안고 살아간다. _12~13쪽 중에서 책에 등장하는 베테랑들은 자신의 몸의 변형을 마주하는 데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 틈을 자부심으로 채우거나, 비슷한 문제를 직면한 동료를 챙기며 문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움직인다. 그렇게 저마다 변화된 몸으로 살아가며, 일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일터에서 마주한 문제와 괴리까지 스스로의 언어로 해석하고 진단한다. 이를테면, 어부와 마필관리사의 일터에서는 비인간 동물에 대한 존중이, 조산사의 일터에서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배우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일터에서는 젠더 역할에 대한 고민이, 안마사와 세신사의 일터에서는 늙고 병들고 장애를 가진 몸들이 논의된다. 30대 여성부터 아흔의 남성까지 각기 다른 얼굴의 베테랑들은, ‘숙련공’이나 ‘베테랑’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기계 설비를 다루거나 육체노동을 하는 초로의 남성 이미지)를 조각낼 뿐 아니라 노동 중에 생긴 신체 변형과 손상의 의미도 다층적으로 만든다. 자신의 일상을 침범하는 일터의 습관·강박 역시 훈장과 결함 사이를 널뛴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반대로, 그 일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이 하는 노동 바깥의 노동이 어떤지 세세히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은 그릇된 환상이나 낙인의 꼬리표가 붙는다. 《베테랑의 몸》은 저자와 베테랑의 말을 빌려 노동 안팎의 시선을 고루 교차시키며,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저자 역시 베테랑 노동자와 마주앉아 그가 어떻게 자신의 일과 몸을 바라보는지를 먼저 들어본 후에야 비로소 그의 노동을 이해할 수 있는 점과 닮았다. 누군가가 어떻게 빚어졌는가, 즉 몸에 붙어버린 일과 생의 흔적, 자부심과 문제의식들을 고루 떼어내 볼 때, 우리는 섣부른 동정이나 시혜,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숙련의 시간을 거치며 빚어진 것들’에 대해 오롯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설고 흥미로운 일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이것이 나의 환상임을 안다. 우리는 타인의 직업에 환상을 품거나 편견을 가지거나, 그도 아니라면 무지하거나 무심하니까. 그래서 그의 일터로 간다. 평생 ‘일’을 다뤄온 사람과 마주 앉아 그의 손끝에, 어깨에, 발뒤꿈치에, 입가에 노동이 남긴 흔적을 본다.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흔적을 따라잡다 보면 노동이 삶에 새긴 자국, 때론 어떤 저력과 만나게 되는데 그제야 비로소 누군가의 일에 환상과 편견을 가지는 일이 멈춘다. _18쪽 중에서
저자
희정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23.08.31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

  수많은 고민 속에서 나는 해메었다. 연말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무거운 돌이 내 앞에 서있고, 지인의 말대로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 된다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생각 속의 생각에 얽매여 버렸다. 그렇게 해메이고 부고를 들었다. 연말이라 사건 사고도 많았고 부고도 많았으며 안타까운 일들로 물든 2023년도였다. 내 일도 아닌데 나는 나에게 닥친 파도처럼 그들에게 공감했고 표현을 하지는 않았으나 괴로웠다.

 

  한숨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도대체 베테랑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나를 괴로워하게 만드는 걸까. 그 괴로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준건 <베테랑의 몸>이라는 이 에세이였다. 

 

  자신의 직업에 보이는 긍지가 놀라웠다. - 책 중에서 - 

  숙련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 의 시간 속을 채워 쌓이는게 아닌가. - 책 중에서 -

 

  우울한 상황이 계속되고 사람들 속에서 피어나는 소외감이라는 감정은 전의 글에서도 썼지만, 베테랑들이라고 느껴지는 이들에게 소외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일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으로 뭉쳐 자신을 표현하는 그들이 바로 베테랑이었다. 

 

책 속의 문장으로 배우는 베테랑의 정의.

  "근육을 이완하라고 말하고 제가 인체에 관해 모르면 안되잖아요" 라고 안마사 최금숙씨가 말했다. 안마사가 느끼는 것이 단순히 공부를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반복된 고민과 생각 끝에서 발생하는 손 맛. 그것이 그녀에게는 베테랑의 의미일지 모른다.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전시기획자인 전포롱씨는 이렇게 말했다. "베테랑이란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자신감, 완벽주의 성향... 무엇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오일파스텔을 하는 그녀는 그녀의 예술속 재료를 다루는 사람으로써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일의 모든 것을 자연스레 감내할 이유는 없다. " 고 했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감내할 필요는 없다. 베테랑이라고 그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은 이유 불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얼굴이 청순하게'라고 쳐도, 엉덩이는 어떻게 순진하게 하지? 팔꿈치마저 조신한데 어떻게 '자신있게' 있으라는거지?  그러나 안다.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땅히 해야한다' 이다. 

 

 

 

책을 닫으며.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마음의 괴로움에 나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하기 위해 달려왔던 긴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베테랑이 되고자 노력했던 나의 바램은, 연기가 되어 어느 순간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 건 "더 이상 워커홀릭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스스로의 다짐 때문이었다.

  

  행복을 위해 워커홀릭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2023년이 훌쩍 지났고, 어느 해보다도 작년은 꽤나 심적으로 고되었다. 틈만나면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추가 근로에 포괄 연봉을 넘어서도 일을 해야 만족스러웠던 나의 인생은 결국 돌아보면 주변에 사람도 없었고 내 스스로 남은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위로가 되었던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일과 나의 생활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고 일할 때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자는 자부심이 든 까닭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작게 생각하고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지만 결국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고 베테랑의 인식도 나에게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베테랑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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