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관계에서 이해를 참 쉽게 말한다.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상대 입장도 생각해보라고,
원래 사람은 다 다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관계에는 분명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관계에서는
늘 한 사람만 이해한다.
한 사람은 침묵하고,
한 사람은 이유를 추측한다.
한 사람은 거리 두고,
한 사람은 그 거리의 이유를 혼자 해석한다.
나는 늘 후자였다.
연락이 뜸해지면 바쁜가 보다 했고,
무심한 말투에는 원래 표현이 서툰 사람이겠거니 했다.
애매한 태도에도 사정이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계속 이해하려고 애쓰는데
상대는 단 한 번도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이해는 배려 위에서 가능한 거지,
무책임 위에서 강요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받고 싶은 사람은 보통 설명하려고 한다.
늦은 이유를 말하고,
상대 마음이 다쳤을까 살핀다.
적어도 혼자 남겨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이해만 바란다.
그 관계 안에서는 이상하게
한 사람만 계속 성숙해야 한다.
괜찮다고 넘기고,
예민하지 않은 척하고,
섭섭함에도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웃는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타인의 무관심까지 이해해야 하지?
관계는 서로가 조금씩 건너오는 건데
어느 순간 나만 물속에 있었다.
나는 상대를 이해하느라
내 감정을 오래 방치했다.
서운했던 순간들도,
기대했다가 혼자 민망해졌던 순간들도
전부 별일 아닌 척 지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안다.
계속 애써 이해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꼭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걸.
때로는 이해보다 먼저 필요한 게
내 감정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
조용히 선을 긋기로 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의무가 없다.”
그 말은 누군가를 미워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나 자신까지 잃어가며 누군가를 납득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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