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
<3부작>을 처음 접한 건 노벨문학상에 대한 뉴스기사에서였다. 마침 "노벨문학상"이 수상되기 전부터 책을 고르느라 교보문고에 들락거리고 있던 나는, 수상작이 발표되자마자 이벤트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 찾았다. 상을 받은 이들의 이력을 살펴보다 언뜻 뇌리에 박히는 글을 발견했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이었다.
인류를 위한 이야기라니, 선뜻 이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은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곱씹게 되었다.
줄거리
<3부작>의 주인공. 아슬레와 알리다다. 아버지 시그발에게 물려받은 바이올린을 들고, 보따리 두 개에 모든 짐을 싸서 살아온 마을을 떠난다. 배가 부른 알리다를 집에 두고, 그녀를 위해 고급진 팔찌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알리다의 어미는 죽었고, 누군가가 살던 요트에서 자리를 잡고자 했으나 결국 그 요트의 주인이 나타나 그들을 쫓아낸다. 하지만 요트의 주인은 죽임을 당한 채 발견되고, 아슬레와 알리다는 목숨 하나의 죽음을 뒤로하고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요트에서의 사망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확인되고 아슬레는 붙잡힌다. 사실 아슬레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받는 상황일 때가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것을 아슬레의 꿈이 현실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그 이후의 줄거리는 책에서 확인 요망!
통신체의 오류 : 뭥미?
"뭐임?" 이라는 단어를 키보드에서 급하게 누르면, "뭥미"라는 말이 된다. 통신체의 오류다.
<3부작>의 첫 페이지를 연 나의 느낌이 그랬다. 이거 뭐지?
동시에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완전히 내 고유의 방식으로 쓴다.”
소설 <3부작>은 구두점도 없고, 따옴표도 없다. 단순히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화조차도 따옴표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인물들의 대화는 충실하고, 자연스레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머릿 속에 무언가 그려지는 느낌을 준다. 독자의 생각과 머리속에 있는 배경 지식이, 주인공들의 얼굴 형태를 그리기보다 그들이 상황을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간접적으로 그리게 함으로써 아름답지만 서글픈 한 커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특히나 옮긴이가 작성한 말에서도 욘 포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포세는 최소한의 인물과 최소한의 대사로 꾸며지지 않은 현실의 상황을 구현하며,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하루의 일과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근원적인 고독을 포착해
소리, 리듬, 흐름을 가진 자신만의 문학적 언어로 표현한다.
수상작이지만..
나에게 욘 포세의 <3부작>은 신선한 느낌이 있음은 당연했다. 따옴표도 수식문구도 없는 소설이, 소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 것은 신선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아슬레의 죽음이, 그가 느낀 것들이 대화형식으로만 서술되었기 때문에 그의 느낌인지, 정말 그가 살인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설이기에 그들의 대화나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모든 내용이 연결될테다. 그것을 노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소설에서 누군가의 꿈과, 주변의 시선과 말들을 구분해 알고 싶은데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하지만 신선함은 10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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