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과 진짜 노동을 구별하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꼭 필요한, 불가결한 요소다.
노동의 대부분이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없는 신기루에 가깝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자가 노동의 허상적 본질을 부정한다.
책의 도임부 중.
'목차
가짜, 진짜의 사이 그 어딘가.
가짜 노동의 시작점, 개신교와 산업혁명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진짜 노동을 위하여
#ref1. 진짜 노동을 위한 전략
나의 진짜 노동
#ref2. 노동의 이유(동기)
내부회계관리제도와 가짜노동
가짜, 진짜의 사이 그 어딘가.
가끔, 아니 종종 나는 일을 하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의미가 있나" 하는 의구심도 함께다. 거기에 "지독한 소외감을 느끼거나, 나에게 뭔가 잘못이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질 때도 있다. 동료들과 얘기하다보면 금새 이겨내게 되는 단순한 질문이지만 내 스스로에게는 고독과 외로움을 일으키는 원천이다.
하지만 답은 쉽다. 고민에 대한 부끄러움은, 누군가와 얘기를 하다보면 금새 풀린다.
상대방이 이상할 수도, 내가 생각을 이상하게 한 것일수도 있음은 3자와 얘기하다보면 금새, 풀리기 때문이다.
보이려 하는 일, 형식적인 보고서, 아무 성과 없는 조직 개편의 끝없는 쳇바퀴에 우리가 얽매여 있지 않다면, 그곳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9p / 180 p
한때 워커홀릭이라는 별명이 나를 따라다녔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나에게 일은 중심이었고,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일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가짜와 진짜 노동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짜 노동의 시작점, 개신교와 산업혁명
저자인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은 <가짜노동>의 시작을 개신교라고 보는 견해를 보여준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사냥을 통해 노동의 대가를 누적함으로써 점차 비축된 자산은 자본가들이 여유를 갖고 진취적인 사상을 향해 가도록 도왔다. 이들은 확보되어 창고에 쌓인 자산을 토대로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해왔고 세속의 쾌락을 거부하며 나아가는 노동의 진취적인 방향을 가지는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 더 긴 미래에,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희망 아닌 희망이 더해졌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자산을 모아 신에게 바치는 '십일조', 월급을 받으면 일부를 바치는 헌금의 목적이 자본가들에게 중요한 의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을 것이고 표현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가짜 노동>이 시작된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물론, 개신교가 가짜노동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하나의 견해일 뿐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그래도 흥미로운 시각이긴 하다.
또 다른 견해 중의 하나로 <산업혁명>이 가짜노동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다. 증기 기관차가 개발되면서 빠른 속도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더 넓은 땅에서 더 넒은 관리를 하고자 했다. 여기에 현장 노동자들(블루 칼라)와 사무직 노동자들(화이트 칼라)의 구분선이 명확해지던 시기라, 사무실에 앉아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하는 화이트칼라를 향한 사람들의 (상위 계층으로의) 로망도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을 수 있다.
산업의 고도화가 시작한 <가짜 노동>
그러니 화이트칼라에 대한 로망과 깔끔하고 지적인 모습에 대한 욕구 중 하나로, (돈은 걱정에 없으니) 자본가들은 더욱 관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이 관리는 서류, 보고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세상에 퍼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산업의 팽창에 이어 부족함을 느낀 사람들은 교육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과잉 교육과 함께 지식노동자들도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식노동자들의 과대한 시장은 온갖 종류의 일이 만들어지게 된 큰 계기가 된다. 택배 접수자, 택배함 관리자, 재무관리자, 재경 관리자, 실무자, 직원의 필요에 따라 볼펜을 나눠주는 자, 미팅룸을 담당하는 실무자, 등등.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가짜 노동>의 부제다. 만화나 소설 속의 허구의 느낌처럼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도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거절하고 싶은 네이밍이기도 하다. <가짜 노동>이라니, 내가 가짜 노동을 한다는 말인가.
농부, 어부, 대장장이, 항만근로자라는 직업에 대해 풍자적이거나 비판적인 작품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면에 사무직은 처음부터 통렬한 피반의 대상이 되었다. 28/180 p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자면, 나는 가끔 그렇다. 익명인 블로그에 포스팅으로 남기며 수많은 익명 속에 가려져 내가 <가짜 노동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파묻힐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도 하다. 직급은 올라가지만 스스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해볼 때마다, 항상 NO라고 대답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는데 훅 들어오는 질문에는 너무나 스스로 솔직한 답을 하고 있다.
책 속의 많은 익명 제보자가 <가짜 노동>을 (작가들에게) 신고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진짜가 아닌 가짜였음을.
- 바빠보이기 위한 쉬운 방법으로 의미 없는 회의
- 마우스의 딸깍임과 키보드 두드림
- 갑자기 1월 2일이 되었는데 홍보팀에게 할 일을 주어야 하는 스트레스 등등
진짜 노동을 위하여
통제로는 신뢰가 쌓일 수 없다. 내가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사람들도 믿음직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130/180 p
진짜 노동을 위하여 2명의 저자는 아래와 같이 변화 전략을 추천한다.
#ref1. 진짜 노동을 위한 전략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기
이젠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자
회의는 짧게
불완전함을 감수한다 : 완벽해질 필요 없다.
먼저 믿음을 준다. : 동료들에게 할 일을 주고, 그 일을 마칠 때까지 그들을 믿자.
바쁘지 않을 땐 바쁘지 않다고, 속도가 괜찮다면 괜찮다고 말하자.
시간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안뜰이 깨끗하면 빗자루질은 끝났다.
허위 형성의 껍데기 안에 갇힌 동안 자기 계발을 하자. : 자신을 진짜 인간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시작을 하자.
진짜 일에 헌신하자 : 물건을 바뿌기보다 고치자. 그것이 물건을 더 잘알게 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도덕적 책임감을 희석하지 말자.
복종하지 않을 의무 : (그들이) 자기들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경영교육이 해겨랙이라고 생각하지만, 뭐가 진짜 문제인지 알고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아는건 '나' 다. 시민적 불복종은 때로 자기 일을 확 쳐내서 조직을 조직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의 진짜 노동
책을 모두 읽고 생각해보건데 가끔 나를 가짜 노동에서 구하는 것은 "복종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 "해!! "라고 말하면 그 당위성이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NO라고 말했다. 누군가 물어보기 이전에 일정의 변경을 알게 되면 그 즉시 공유했고 보고 목적이 아니라, 내 스스로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이러한 작은 행동이 <가짜 노동>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그러니까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가짜를 없애고자 노력해왔던 것이다. (잘하고 있어)
결국 <가짜 노동>으로 시간을 허비하거나 일처럼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려 애쓰던 것들이
#ref2. 노동의 이유(동기)
생존, 돈, 본질(인간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적응,
타인의 인정, 자신의 인정, 청교도적 노동 윤리 (우리가 구원으로 가는 올바른 길에 들어서는 것 = 사업의 성공)
대안의 부재, 불안 저지,
내부회계관리제도와 가짜노동
코스닥, 그러니까 국내 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은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받는 외부 감사를 제외하고도 기업 자체적으로 문제될 부분이 없도록 꼼꼼히, 내부에 별도의 인원이 세팅된 조직에서 직원들이 하는 일을 감시하는 업무다.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만든 누군가에게 이 법적인 제재는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법이나 산업분류와는 무관하게 내부적으로 적극적인 통제가 되어야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을 수 있고, 내/외부 감사에서도 경영과 관한 한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목적인 이 <내부 회계관리 제도>가 미관련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업무일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감사에 대응하는 재경을 제외하고 그와 관련된 부서원들에게는 <내부회계관리제도>의 목적성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않는 한 이는 <진짜 노동>과 <가짜노동>의 사이에서 "보여주기 위한"하나의 편법일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느 날 부터인가 일하는 업무를 감시받는 느낌이었다. 달라진 건 없는데, 업무가 반복적으로 확인과 확인을 거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엔 이미 스스로에 대해 많이 지쳐있을 때였다. 그런데 회사에 소속되어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햐면 결국 회사에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지급 받는 것이 급여이므로. 따라야 하는 것이 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는 없던 스트레스가 사람과 내부 회계라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생기면서 나는, 이따금씩 노동을 하는 건지, 반복된 노동으로 나를 혹사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월급쟁이가 버텨낼 재간이 있나. 하지만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짜 노동>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을 해보는 건 어떨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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