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무게

[에세이] 스펙을 위한 스펙은 없다.

올라씨 Elena._. 2013. 1. 2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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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에게서 학력,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


그렇지만 당신을 위한 스펙은 없습니다.

오로지, 회사를 위한 - 그러니까 당신이 그토록 들어가고자 하는 대기업의 커트라인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스펙만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어렸을 적 가졌던 당신의 꿈은 어디에 갔나요?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어쩌면 돈을 위한 것인가요?

당신이 어렸을 적에 바랬던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은 다 필요없습니다.

누구나 쉽게 하는 얘기일 뿐, 어떠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어린 시절 부모의 공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성 성격을 가지게 되지만 근본적인 해소가 되지 못하기에 끊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웹툰 프로스트 중.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체, 돈과 명성에 휘둘리는 누군가의 꿈은 의미가 없다.

일을 하며 X같은 돈이라도 몇 푼받겠다며 짜증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만둬야지, 이직해야지 다짐만 하다가는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라는 조지 버나드의 묘비명만 다시 보게 될 뿐이다.

내일부터 시작해야지, 조금만 더 자자 하는 조그마한 다짐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위한 스펙은 결국 꿈을 멸망시키는 존재임과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의 인생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는 것이다.

오로지 스펙은 본인을 위해서만 존재해야한다.

스펙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의 것으로 표출 할 수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스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취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이력서를 써보았고 면접관들을 만나 내 심리를 테스트 해보았었다.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빛내는 데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못했으며, 나의 인생은 면접관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누구나 들으면 '거지학점'이라고 말할 만한 그 학점을 가지고도 난 떳떳하게 취업을 했다.


대기업이 아니었다.

나는, 내 어릴 적 가졌던 광활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꿈이 내 자신을 좀먹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것이 대학교 4학년 때의 일.

아버지가 대기업에 다니는 나로서는 주변의 시선들은 대기업을 향했다.

그러나 나는 그 기대감을 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아니라, 

복지후생이나 연봉따위도 나에게는 중요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나에게 돈은 중요치 않았다.

일을 해도 찾아서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사실들로 비춰볼 때 나는 대기업을 들어가고 싶지 않았으며, 재미있게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택했다.

'취업뽀개기'를 성공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잘했네. 그런데 어디 들어갔어? 삼성? 현대?." 

나는 말한다.

 " 흔히 아시는 대기업 아니에요. 대기업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인들의 대기업 연봉과 복지후생을 들먹이며 이직을 권한다. 

자신의 친척일 경우에는 더욱 더 큰 자랑을 일삼는다.

나는 뒤돌아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보낸다. 

인생은 돈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고, 적어도 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돈이 적으면 적은데로 만족하며 살면 되는 것이며, 다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의 경력을 나만의 경력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스펙이다.

세상을 위한 스펙이 아니라, 나를 통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나만의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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