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살인자의 기억법 』 이 생각나는 소설, 『종의 기원』 이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화 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설경구 배우가 열연했던 그 영화다. 알츠하이머 환자이면서 25년간의 살인을 졸업하기로 다짐한 그에게 딸인, 은희가 사라지자 그녀를 되찾기 위한 1인적 시점. 그런 시각에서 소설 『종의 기원』은 1인칭 시점의 『 살인자의 기억법 』 와 닮았다.
줄거리 정신병을 앓고 있는 그가, 어릴 때부터 발작 증세를 보일 때면 엄마는 이모에게 그를 데려갔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발작전구증이라는 듣기도 쉽지 않은 병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의학과 의사인 이모는 엄마가 그를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그에게 약을 처방해준다. 그가 정말 좋아했던 수영 조차도 약을 먹으면 스퍼트가 나지 않아서 약을 멈추고 기록을 갱신해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수영장에서 발작이 올 거라는 직감에 숨어버린 그는, 결국 수영을 못하게 되었다.
원망. 그의 원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약 끊기’는 사막 같은 내 삶에 스스로 내리는 단비였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단비의 비용으로 발작이라는 후폭풍을 치러야 한다. 지금 자각하는 현상들은 폭풍의 임박을 알리는 전령사였다. ‘발작전구증세’라 통칭되는 어수선한 환각이었다.
<책 중에서 >
정유정 작가가 쓴 『종의 기원』 의 창작 의도를 밝히는 과정에서, <사이코패스의 자기변론서>라는 말을 했다. 악이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라는 주제로 시작된 이 소설은 '나쁜 자는 벌을 받는다' 라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으므로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와 같은 시원섭섭함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회 속의 만연한 범죄가 어떻게 점화되어 발전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잘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조금은 해소하게 만든다.
불쌍하다는 말을 즐겨쓰지 않는 나지만, 인생의 기로에서 스스로 어떠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결정을 해야한다면 그건 어릴 적 부모의 교육과 어릴 때에 자라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어야 할테다. 『종의 기원』 소설 속 주인공인 그에게 환경과 교육은 부재했으며 그것이 그를 불쌍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살인자인 그를 사람들은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조절하고 감내해야 할 그의 성격으로 치부할 뿐.
죽는 길을 생각해봤다. 가장 쉬웠다. 목을 매든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든가, 아버지의 면도칼로 내 목을 베든가. <책 중>
자수하라는 해진의 말에 그는 다른 최선을 택했다. 결국 그는 소설의 끝머리에 이르러 스스로에게 적당한 삶을 선택하며 끝난다. 세상이 사건, 사고에 맞추어 어떤 조작을 하거나 사실 아닌 이야기들을 풀어내던지 상관없이 그에게는 그의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 끝 -
이제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신 유진이 미미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싶다. <저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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