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무게/마음을개운하게해보았다.

우울증의 시작과 끝. 원인 찾아보기.

올라씨 Elena._. 2024. 2. 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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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시작과 끝. 원인 찾아보기. 

 

  산도스설트랄린.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제. 7년 째 먹고 있는 이 약은 공항장애, 우울증, 강박장애 등에서 효과를 주는 약이다. 우울증 약으로도 불리고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간에 약을 바꾸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설트랄린이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소중한 약이다. 

 

  지난번에 슬픔 카테고리에 작성한 글에 이어, 또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2023.09.05 - [공존의 무게/슬픔] - 우울증, 감정기복 극복할 수 있을까.

 

  이 글은 기분이 상당히 쳐졌을 때나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기력이 없을 때 행동들을 정리해보았는데 원인을 찾기보다는 순간의 상황에 맞게,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내 스스로가 피곤에 쩔어 있을 때 작성했던 글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원인이 찾아진 느낌이라, 미루고 미루다 이 글을 쓰게 됐다.  

 

목차

우울증의 시작과 끝. 원인 찾아보기. 

원인1.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원인2. 비현실적인 느낌
원인3. 지쳐버린 내 삶 
원인4.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
원인5. 뭔가 잘 못 되었다.
원인6. 나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원인1.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우울증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 때다. 사람들은 그냥 되는데로 살아, 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큰 문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사소한 상황일 뿐인데 나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이 고독스럽고 외로운데, 사람들은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도 잘 살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뭐 되는데로, 닥치는데로 살자 라고 결론지어 시간을 보낼 수록 자괴감은 커진다. 자괴감이 반복되어 진흙탕으로 내 목이 잠길 때쯤 알게 된 원인은, 그것이 나의 탓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이렇게' 살게 되는 원인이 나의 탓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생각해보면, 내가 피곤해 쉬는 날이면 잠에 푹 빠져 시간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타인의 고민을 마치 내 고민인 것처럼 푹 빠져 시간을 살아내는 성향이 있었는데 그 것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소화불량도, 허리가 삐그덕거려 찍은 MRI에서 허리 디스크 초기 증상이 나타난 것도, 사고난 것 때문이지 내가 내 허리에 잘못을 한 적은 없다. 반대로 생각해 내가 운전을 잘 못 해서 사고가 난 들, 그 것이 내 원인이라 볼 수 있을까? 나는 내 몸을 해하려 한 적이 없다. 

 

원인2. 비현실적인 느낌

  내 손은 사이즈가 정해져있다. 성인이 되어 자리잡은 키와 몸무게 안에 손가락의 사이즈, 얇은 손목과 작은 손가락은 물리적인 형태와 규격이 정해져 있는데 눈을 감고 있자면 내 손과 발의 사이즈는 무한정 늘어난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커진 내 손가락과 손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나는 혼자 우왕좌왕 거린다. 

 

  현실에서 도피 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뇌가 나에게 보내는 증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원인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주는 빡센 감정이다. 정해진 룰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경우 원인과 상관없이 약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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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3. 지쳐버린 내 삶 

 

  나는 지쳤다. 반복되는 사람들의 요구 속에, 원인이 확인조차 되지 않는데 결론을 나에게 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지쳤다. 나는 빨리 말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빨리 말하는 것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 뇌에 자리 잡지 못했다. 나는 성급한 내 성격 탓이라 생각하고 말하는 속도를 낮추고,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먼저 질문하지 않았다. 원인은 내 성격에 있었고, 빨리 시작하고자 하는 내 마음이었는데 세상의 삶은 내 마음 같지가 않았다. 나는 내려 놓기로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나는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사람들이 놓으라고 한 말이, 내려놓으라는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급한건 그들이다. 내가 아니고, 

  내가 한 번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급한 내 성격에 내가 지치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

  내 성격을 혼내고 때려 고칠 수 없으니, 그냥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것이다. 

 

 

원인4.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주도적으로 살 수 있을까.

  주도적으로 살고 싶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앉아서 멍떄리다 버스를 타고 출근 40분 전에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쪼로록 마신다. 사람들이 둘 셋 모여 커피를 마시러 가듯 나도 오전시간에 동료들과 티타임을 가지고.... 퇴근 후에는 버스가 딱 맞게 도착해 칼퇴의 명확한 뜻에 행복을 느끼고,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음 공부를 하고, 그 날 공부한 기억을 뇌에 저장하기 위해 11시 전에 잠에 들고... 

 

 

 

어제 친구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본인이 좋은 걸 해. 사람이 남의 눈치를 보면은, 이상한 걸 하게 돼"
트위터리안 @dodaeche_J

 

  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빠르게 대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똑같은 질문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주도적인 삶이었다. 삶은 내 기대를 저버렸다. 핑퐁하듯 쉽게 해결되지 않은 채 찔끔찔끔 나에게 다가오는 질문세례는, 내가 30분이나 1시간을 걸려 답한들 그들에게는 답이 되지 못했다. 

 

  주도적이 되어 사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되는데로 살자. 그것이 내가 비현실적인 삶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원인5. 뭔가 잘 못 되었다.

  삶은 나에게 꼼꼼히, 정확하기를 요구했다. 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무언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꼼꼼하고 정확하고 신속한 것이 주도적이라는 맥락이었다면 그 삶 안에 나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알지도 못하고 남의 기대에만 부응해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못 되었다는 걸 알았을 무렵, 나는 글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검은 건 글씨고 하얀 건 배경화면인데 머릿 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했다. 누군가와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 알게 되었다. 삶의 여유가 없었음을. 주도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나 의욕만 앞서 교재의 앞 쪽만 새카맣던 나의 책들은 사람들에게 잘보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투영된 것이었다. 1장만 새카맣던 나의 책들은, 언제부턴가 잘못된 나의 삶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아니야.  

  

 

원인6. 나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나중에 후기로 쓰게 될 예기불안에 대한 책 리뷰와 어느정도는 일치한다. 미래나 지금 닥친 상황에 어떤 재앙이 나에게 다가올까봐 나는 무서웠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토네이도가 내 앞에서 알짱거렸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용기있게 '내가 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겁쟁이였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들이 미리 언지도 없이 파파팍- 하고 전기처럼 내 할 일에 꽂혔다. 내 할 일 목록 리스트는 금새 100 개를 넘어섰다. 

 

  욕심일지도 모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실제로 닥쳐올 위기를 생각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용두사미가 따로 없다.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위험을 감지 하지 못하더라도, 예측하지 못한 위험이 갑자기 날 닥치더라도, 생각보다 세상은 쉽게 멸망하지 않을테니까. 

 

끝 :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누군가는 무서운 세상이라며 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음을, 바꿔 말하면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완성될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 우울증이라는거, 공황 장애라는거,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살아보기로 했다. 원인을 조금은 알았으니.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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