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선택한 이유
언젠가 갑자기 피곤해지는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충분히 쉬었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시간들이 지속되고 오히려 머리까지 무거워 모니터조차 쳐다보기 힘든 날.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었고, 퇴근하면서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것도,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렸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피로에 대한 책을, 그러니까 내 고민을 해결해줄만한 책을 일주일 정도 찾았는데 찾지 못했다. 마음에 와닿지 않는 제목들부터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피로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내용들 뿐이었다. 몸의 체질이니 스탠퍼드 대학에서부터 전해진 피로 회복법이라던가. 전혀 알 수 없는, 읽어보고 싶지 않은 책 투성이었다. 이상했다. 제목이나 목차만 보고도 책을 선뜻 선택해 읽었던 내 평소의 스타일과는 달랐다.
여러가지로 내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이 책 제목을 보게 됐다.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이라니. 딱 나였다. 뇌의 그로기(groggy 권투에서 심한 타격을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일)가 찾아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꿈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의 구름에 가득 둘러쌓인 기분.
그러다 문득 TV에서 정재승 박사의 인간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고 "뇌과학"과 "인간' 이 이상하게 맞닿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이 떠올랐다. 그렇게 첫 장을 폈다.
책갈피.
- 요즘 사람들은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어도 잡생각과 근심걱정.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피곤하다고, ~
- 대영사전에까지 등재된 빨리빨리 pali pali(빨리빨리) 라는 한국인 특유의 조급증이 사라져야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다..
-뇌 피로는 뚜렷한 증상이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처럼 뚜렷한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그냥 넘겨버리기 쉽다. 그리서 뇌피로를 피로감 없는 피로'라 부른다.
- '정작 이렇게 쉬고 있어도 쉰 것 같지가 않으니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빤했다. 그는 몸은 선마을에 있지만 마음은 이곳에 없었다.
- 결국 담배와 커피, 드링크제를 달고 살지만 효과는 잠시 뿐이다. 병원을 찾아도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만성피로나 스트레스 , 대인관계같은 막연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 뇌에 피로가 쌓이면 눈이 침침하고, 귀가 먹먹하다. 입맛도 없고 냄새에 둔감해지며 촉감이 예민해진다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를 한없이 달리다보면, 어느순간 속도감이 사라지고 시야가 좋아지는 감각의 이상이 찾아온다. 이를 하이웨이 히포노시스 hihgway hypnosis라고 부른다.
- 지겹다'는 감각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뇌의 첫 경고 메세지다. 이 순간 반드시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 뇌 피로는 정신 증상만 일으키지 않는다. 앞에서 열 번 까지는 대체로 정신 증상이지만, 그 아래는 신체 증상에 해당된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방에서 지뢰가 터지듯 수많은 일들이 닥치는 날이 있다. 이처럼 갑자기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질 때 우리의 뇌 역시 폭발할 위험성이 높다.
- 피곤의 느낄 정도의 무리한 단련은 삼가자. 수련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특수한 목적이 없는 이상 좋지 않다.
- 교통 전쟁에 매연, 경적, 미세먼지, 생활 소음, 묻지마 폭행에 살인까지 수많은 부정적인 환경 요인이 우리의 뇌를 한 없이 피로하게 만든다.
- 도파민은 뇌에게 시지않고 일하라고 명령한다. 누가 봐도 그만하면 됐지 싶은데 부족하다고 외치며 독촉하기 바쁘다.
- 감정 폭발은 금물, 여력을 남겨야 내일도 오늘처럼 잘 할 수 있다.
- 감정폭발은 금물 어느 경우든 나만 손해다. 첫째 경우라면 그 인경의 문제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할 것이다. 둘째 경우라면 진심이 전달되기는 커녕 상대방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이다.
- '천천히를 의식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서두른다. 의식적으로도 서두르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고 습관화되다보니 이제는 무의식 중에도 서두른다.
책을 덮으며,
사실 '뇌과학'과 '피로'를 연결시키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내 피로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되었다. 정재승 박사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이번 달은 뇌에 관한, 정확히 말하면 뇌과학에 대한 책들을 구매해 책장 속에 넣어놨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아, 그래. 이제 문제를 알았다. 내 피로는 뇌에서 오는 거였구나" 이다.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조울증일까. 사람들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행동과 말에서 나는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예전에 그로기상태였을때보다 훨씬 활발해진 나를 발견하면서도 우울증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마음을 침범한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을 때는 그냥 '하는 것도 없이 피곤해' 였고, 좀 움직였다 싶었을 때는 '움직여서 피곤해' 였는데 둘 다 모두 원인이 없었다. 어차피 피곤할 바에 움직이는게 나은데도 나는 "피곤하다"는 말을 핑계삼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인식하고 있는 채로 감정의 폭발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덮고 느낀건 내 뇌의 자극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함 없었기에,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그로기 상태였다는 것. 내 눈 앞이 침침하고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도 모르는 순간, 어느새 내 뇌를 잠식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책을 덮은지 약 2주가 지났다. 나는 2주 전보다 조금 더 덜 피곤하고, 감정을 덜 소비하게 되었으며, 문제가 터졌을 때 스트레스를 맏지 않는다. 물론 정말 매우 가끔은, 멀미가 날 것 같은 느낌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이 것들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 책 덕분이다. 리뷰를 통해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fin.
덧붙여 "뇌가 좋아하는 7가지"를 소개한다.
번외. 뇌가 좋아하는 것들
1. 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2. 뇌는 모험을 좋아한다.
3. 뇌는 발전과 성장을 좋아한다. 등
4. 뇌는 시간 제한을 좋아한다.
5. 뇌는 지적 쾌감을 좋아한다.
6. 뇌는 적절한 스트레스를 즐긴다.
7. 뇌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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