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이유/독서 그리고 책.

#104. 잔여감이 여울지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올라씨 Elena._. 2024. 2. 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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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문학상은 어떤 의미일까.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이 그러했듯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상이다. 그의 명성만큼이나 서정적인 글에 수여하는 이 상은, 어렸을 적 아빠의 책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다.  

  

  책을 덮으며, 

  개울가에서 수제비를 뜰 때, 통 통 하고 튀어나가는 돌의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두 번, 세 번을 연달아 중력을 거스르며 다시 개울과 대치되어 하늘에 뜬 것처럼 보이는 돌과 개울가의 연관성은 쉽게 생각할 수가  없다.  물가와 돌이 어떤 관계가 있어 저렇게 예쁘게 수제비가 떠지는지의 상관관계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몇 번의 수제비가 떠졌냐고 횟수에만 집착하는 현대 사회를 보는 것만 같아서 책을 덮는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했다. 

 

 

 

간단명료 책소개 

 

오늘날 우리에게 진지한 삶의 태도를 묻고 답할 수 있는 '멈춤의 순간'을 제공하는 이야기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전자책 발행 2023년 9월 11일

지은이 안보윤 강보라 김병운 김인숙 신주희 지혜 김멜라 

펴낸곳 주식회사 교보문고 

 

무미건조한 삶 속의 잔잔함.

 

  3,000만원의 상금보다 값진 순간을 포착한 작가들의 글을 올해도 만나보았다. 분명 읽고 있는데, 읽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요즘 내 일상이 무미건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나는 책을 읽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심사평을 듣고 나서야 내가 느낀게 거짓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제서야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다행이었다. 아찔한 쾌감이 올라왔다. 아, 감성적인 들이 읽히지 않는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치나 농담이 되어버린 시기에, (중략), 2023년 제 24회 이효석문학상은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를 직시하면서도 결코 사회적 분위기나 패턴화된 삶에 짓눌리지 않는 소설 속 인물들의 입체적인 가능성의 영역에 집중하고자 했다. (중략).

 

  리뷰에 심사평이 먼저 나오다니, 책 리뷰를 쓰는 내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심사평만한게 없지 싶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심사평을 북마크삼아 의견을 남겨볼까 한다. 내 기억 속에 아직 잔향이 남아있는 단편 소설은 <자작나무 숲>과 <북명 너머에서>, 그리고 <애도의 방식>이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 

  어느 것도 자신의 혈족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은 '쓰레기 호더' 할머니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할머니의 집,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애증 섞인 시선과 신랄한 서술만으로도 이 소설의 읽는 재미는 보장된다. (중략) 결코 한 겹의 껍질을 벗겨낸다고 해서 밝혀낼 수 없는 진실처럼, (중략)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모호한 시선과 관점을 드러내는 방식은 매력적인 열릴 결말이라고 (중략)

 

지혜의 '북명 너머에서' 

  (중략) 두 여성 사이의 호감과 애정이 발전하는 과정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서로의 사정에 의해서 어떻게 엇나가고 멀어졌는지를 그리는 과정의 애틋함이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중략)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 

  주인공 동주가 일하는  '미도파'라는 찻집은 늘 소란 속에 있지만 소란스러워지지는 않는 공간적 특수성을 가진다. (중략) 승규의 엄마인 '여자'가 집요하게 동주를 찾아와 진실을 요구하던 것에서 벗어나 결국 동주에게 어떤 진실을 듣지 않고도 떠나가서 (중략) 

 

   유튜브 쇼츠나 수많은 인터넷상의 정보 사이를 누비다 보면 어느샌가 휘발되어버리는 시간의 밀도만큼이나, 우리는 사회적 현실의 흐름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저항하는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제 24회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단의 심사평 중에서. 

 

후기를 끝내며.

 '자작나무 숲'  쓰레기를 모아 재끼는 할매의 손에서, 그의 재산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할매를 버리기 위해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던 손녀는 어느 순간 할매와 손녀 자신 중 누군가를 버려야 할 지 고민에 쌓인다. 아니, 죽은 할매를 버리러 온 것 같은데 헷갈린다. 할매를 버리러 온 것이 맞을까. 그렇게 막을 내리는 소설은 열린 결말도, 닫힌 결말도 아닌 것이 찝찝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쌉싸름한 잔여감을 남긴다. 싫었지만 싫어할 수 없는 할매와 손녀의 관계는 쉽게 뗄 수 없는 묘한 상황을 보여준다. 자작나무의 꽃 말은 이거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애도의 방식' 사람이 죽었다. 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육하원칙을 뒤로 하고라도 의문인 사고사. 죽은 사람의 엄마는 매일 주인공이 일하는 '미도파'로 찾아온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으깨지만 그건 사람 마음을 으깨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소란스럽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음식집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는 결국 스스로의 마음을 보이지 않은 채로 끝난다. 엄마의 애도방식은 시간이 흐르며 죽은 현장에서의 아들을 떠나보내는 심정을 '미도파'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주인공에게 추궁 아닌 추궁을 하고 자연스레 흘러 없어진다.  사람마다 애도의 방식은 다르지만, 자기에게 맞는 애도 방식이 있음을,  집중도 있게 그려내어 기억에 남았다. 

 

'북명 너머에서' 사람과의 관계는 모를 일이다. 어느 순간 친해졌다가도 몇 초만에 등을 보이고 돌아선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 살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저 사람은 왜 나에게 등을 돌렸으며 또 이 사람은 갑자기 마음에 떠올라 버리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애증 속에서도 호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조옥과 정자를 통해 새삼 느끼게 해주는 소설 속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다. 암, 인간관계가 그렇더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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