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글 희정
사진 최형락
펴낸이 이상훈
펴낸 곳 (주)한겨레엔
2023년 9월 20일 전자책 발행
2023년 12월 읽음.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2024년이 새로운 마음일 것이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좌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2023년의 연말을 맞이한 내 기분과 느낌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2024년의 새해에 이 책의 리뷰를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
베테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0년 넘게 한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해보자면, 나는 베테랑이 아니었다. 경험치로 쌓인 업무가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함께 일하는 직장인들과의 관계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내 스스로를 내가 보았을 때 '베테랑'이라는 단어는 가당치도 않았다.
그럼에도 선뜻 이 책을 고르지 못한 이유는 '에세이'라는 카테고리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책이라는 건 장문의 글로 이뤄져 있어야 읽은 후의 뿌듯함도 남지 않겠는가. 하지만 <베테랑의 몸>이라는 제목이 나를 휘어잡아서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이 전자책을 무의식적인[!] 손의 힘으로 구매하고야 말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
수많은 고민 속에서 나는 해메었다. 연말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무거운 돌이 내 앞에 서있고, 지인의 말대로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 된다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생각 속의 생각에 얽매여 버렸다. 그렇게 해메이고 부고를 들었다. 연말이라 사건 사고도 많았고 부고도 많았으며 안타까운 일들로 물든 2023년도였다. 내 일도 아닌데 나는 나에게 닥친 파도처럼 그들에게 공감했고 표현을 하지는 않았으나 괴로웠다.
한숨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도대체 베테랑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나를 괴로워하게 만드는 걸까. 그 괴로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준건 <베테랑의 몸>이라는 이 에세이였다.
자신의 직업에 보이는 긍지가 놀라웠다. - 책 중에서 -
숙련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 의 시간 속을 채워 쌓이는게 아닌가. - 책 중에서 -
우울한 상황이 계속되고 사람들 속에서 피어나는 소외감이라는 감정은 전의 글에서도 썼지만, 베테랑들이라고 느껴지는 이들에게 소외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일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으로 뭉쳐 자신을 표현하는 그들이 바로 베테랑이었다.
책 속의 문장으로 배우는 베테랑의 정의.
"근육을 이완하라고 말하고 제가 인체에 관해 모르면 안되잖아요" 라고 안마사 최금숙씨가 말했다. 안마사가 느끼는 것이 단순히 공부를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반복된 고민과 생각 끝에서 발생하는 손 맛. 그것이 그녀에게는 베테랑의 의미일지 모른다.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전시기획자인 전포롱씨는 이렇게 말했다. "베테랑이란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자신감, 완벽주의 성향... 무엇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오일파스텔을 하는 그녀는 그녀의 예술속 재료를 다루는 사람으로써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일의 모든 것을 자연스레 감내할 이유는 없다. " 고 했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감내할 필요는 없다. 베테랑이라고 그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은 이유 불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얼굴이 청순하게'라고 쳐도, 엉덩이는 어떻게 순진하게 하지? 팔꿈치마저 조신한데 어떻게 '자신있게' 있으라는거지? 그러나 안다.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땅히 해야한다' 이다.
책을 닫으며.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마음의 괴로움에 나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하기 위해 달려왔던 긴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베테랑이 되고자 노력했던 나의 바램은, 연기가 되어 어느 순간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 건 "더 이상 워커홀릭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스스로의 다짐 때문이었다.
행복을 위해 워커홀릭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2023년이 훌쩍 지났고, 어느 해보다도 작년은 꽤나 심적으로 고되었다. 틈만나면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추가 근로에 포괄 연봉을 넘어서도 일을 해야 만족스러웠던 나의 인생은 결국 돌아보면 주변에 사람도 없었고 내 스스로 남은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위로가 되었던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일과 나의 생활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고 일할 때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자는 자부심이 든 까닭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작게 생각하고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지만 결국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고 베테랑의 인식도 나에게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베테랑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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