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디서든 자신의 철학으로 해학이 담긴 웃음을 주는 김제동의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됐다. 1994년 문선대 사회자를 시작으로 우방랜드 영타운 진행자, 각 대학의 OT(오리엔테이션) 강사, 축제 진행자를 거쳐 연예계에 발을 디딘 김제동.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사람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진심을 찾을 줄 아는 그가 땡겼다. 게다가 등산을 다니는 옷 매무새를 가진 그를 보게 될 때면 그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왜냐면 산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산은 어떠한 철학과도 같으니까.
이 책이 사람들의 입과 손을 통해 자연스레 홍보되면서 오히려 나는 이 책을 멀리 했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 칭하는 많은 책들과 사람들의 입을 통하는 책은 나에게는 흥미가 없다. 더욱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와전되는, 풍선 같은 말 부풀리기가 나는 너무 싫기에. 그래서 내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도 들어가 있지 않던 이 책이 유난히도 눈에 띄었던 것은 우연을 가장한 우연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김제동을 믿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니 (책에 대한) 재미가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은 김제동의 철학이 담긴 질문이 아니라, 질문을 받고 넌지시 던지는 답변자들의 그것이었다. 김제동이 만난 인터뷰이들의 답변보다 김제동의 첨언이 재미를 가속시켰다. 가속된 독서는 인터뷰이들의 답변에서 다시 감속의 그래프를 그려갔다. 그렇게 책을 읽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두 사람의 철학을 옮겨보고자 한다.
첫 번째 시선. 김C의 철학
김제동이 말한다.
" 형은 획일화에 대한 거부감이 정말 강해. "
김C가 대답한다.
" 획일, 권위, 이런 단어는 어릴 때부터 강하게 거부했어. 난 도덕이라는 과목이 왜 있는지 이해가 안돼. 할머니가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계시면 도와드려야 하고, 노인이 버스에 다면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라가 어디 있냐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그렇게 획일적으로 교육시키려는 게 싫어. 공공을 위해 해야 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잘 알아야 하는 것 아냐?"
" 난 참 이기적인 사람이야. 내가 내키면 하고 아니면 안 해. 어떤 공간에서든 상대로부터 존중 받는다고 느끼면 최선을 다하지. 난 나의 자존감을 굉장히 중요시해. 내가 만드는 작품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거든. (… 중략)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좇아가는 식의 본질을 비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
( * ) 그렇다. 도덕이라는 과목이 왜 있는지는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령, 도덕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하더라도 왜 도덕이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중학교 때부터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누구에겐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답은 신통치 않았다. 나는 도덕이 없어도 인사를 잘하고 다녔기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그건 아니었다. 조금은 눈치를 보며 살았던 어린 날의 기억으로는 " 도덕이라는 과목을 통해 '도덕'을 가르칠 수 는 없다. "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뭐, 지금도 결론은 같다.
도덕 점수는 항상 90점 넘게 받았던 기억은 많은 학생들에게도 있을 터. 도덕이라는 과목을 통해, 또 그 과목을 학습함으로써 어떠한 도덕적 가치를 얻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 그러면서도 묻고 싶다. '내키면 하고 아니면 말고'라는 사고방식이 김C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았겠지만 도덕과 저 문장(내키면 하고 아니면 안해)을 연결시켜본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이런 호기심.
두 번째 시선. 배우 고현정의 철학
김제동이 배우 고현정에게 하소연한다.
" 사실 나는 그게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말예요. 그게 나를 옥죌 때가 있어요. 정말 싫어요. "
고현정이 호되게 얘기한다.
" 그게 답답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 그게 다 내가 한 일이고 나에게서 나온거야.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그들이 판단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남들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욕이지.
내가 주장한 건 핑크였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검정이 될 때가 있지.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잔류형 인간이야. "
(*) 난 왜 모르고 있었을까. 내 주변에서 날 가십거리로 삼아 이야기 하는 것들을 기분 나빠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면서도 내 울타리안에 갖혀 있기만을 원했던 내 소원이 어리석었음을 왜 난 모르고 있었을까. 순간, 미실로 분(扮)했던 배우 고현정이 생각났다. 위엄의 카리스마로 명성을 떨쳤던 미실. 그렇게 배우 고현정을 다시 보게 됐다. 그녀가 쿨한 성격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매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제서야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의 머리 뒤에서 "씹힌다"는 사실을 알고 주먹을 날릴 듯한 기세로 상대를 찾아가지만, 또 다른 비밀을 듣게 되는 순간 주먹은 고요해지고 입은 방정이 된다. 타인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교만함으로 자신의 가십은 정당화되는 모순의 세계. 모순의 세계를 벗어나는 한가지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월든", "정신분석학 강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배우 고현정에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2012. 01. 28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완료.
'Los librosR 11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황의 기술]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방황 (0) | 2012.02.19 |
---|---|
[삼성을 생각한다.] 묵시록(默示錄) (0) | 2012.02.05 |
[에세이] Day8. 나의 독서 취향. (0) | 2011.12.25 |
[북마크] No.4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0) | 2011.12.25 |
[북마크] No.3 지식에 근거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란 무슨 뜻인가? (0) | 201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