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붉은 낙엽'
핏줄의 왜곡,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잉걸불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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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붉은 낙엽'을 관람 한 후 내 머릿 속에는 의문이 생겼다.
[Las Culturas 1405] - 연극 「 붉은 낙엽 」 관람 후기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연극 「 붉은 낙엽 」 관람 후기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집(무대)을 감쌌던 커튼이 쳐지고 막이 오른다. 에릭 무어 역을 맡은 지현준 배우가 커튼을 치고 조금은 가정을 지키는 아빠의 모습인채로, 집안이 언뜻 보이기 시작한다. 붉은 낙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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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릭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도 안되는 논리에 휘둘려야 했을까. 그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어째서, 비극적인 결말로서 연극이 끝나야 했나. 하는 것들 말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의 인생의 전체를 봐야한다는 말이 있다. 그의 인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생각과 말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기 위해 읽은 책. 『붉은 낙엽』 의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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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에 읽기 시작한 '붉은 낙엽'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소설인데? 쉽사리 읽히고야 마는 '붉은 낙엽'은 어째서 내 마음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잔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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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의 아들 키이스는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에 휩쓸린다. 평안하다고, 평화롭다고 믿었을지 모르는 에릭의 삶에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다. 키이스가 가끔 봐주던 아이 에이미가 어느 날 사라진다. 사라졌다는 사실을 안 그의 부모(소설엔 부모가 모두 나오지만 父, 연극엔 母 만 출연한다.)는 키이스의 부모(에릭 부부)에게 사실을 추궁하지만, 마음에 드는 답을 얻지 못하자 경찰에 신고하고야 만다.
"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런가요? 그럼, 그 애는 누구죠?
“워렌은 당신을 시샘해요."
키이스는 부모에게 말한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어요.
에이미의 부모가 말한다. 그런가요?
에릭의 아내 메러디스가 말한다. "워렌은 당신을 시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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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신고가 접수 된 후, 사실이라고 발견된 건 "에이미의 방에 말보로 담배꽁초가 나왔다는 것.', 집과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에이미의 옷가지가 발견 된 것. 이 두가지 뿐이다.
그러나 가족의 말을 믿지 못하고 환경에 점령당하는 에릭의 마음은, 어릴 적 그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갑작스레 추락한 차량의 핸들에 꽂혀 사망한 어머니, 술도 못하면서 주정뱅이인 형 워렌, 그리고 .. 메러디스의 근처를 서성인다고 느껴지는 남자에 대한 것까지.
최초로 키이스의 심각한 산만함이 기이하고 불길한 성격을 띠었을 때, 아들의 외부에 대한 부주의와 질서에 대한 무신경을 보고 놀란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키이스의 산만함이 내면의 훨씬 심각한 혼란을 보여주는 증표가 아닌가 걱정했었다 -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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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의 어릴 적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알게 되지만 사실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 워렌 형의 입장에서 본 보험사 직원이 어떤 이유로 방문했었는지 조차 어렸을 때 경험한 것으로 정확하지 않다. 에릭 형의 말만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다는 에릭의 마음은, 보험사로부터 전혀 받지 못한 보상금이 결국은 자신에서 왔다는 사실로서, 그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호통과 같은, 일방적인 대화를 하고 나서 심신이 붕괴되는 에릭의 상황은 소설 제목인 '붉은 낙엽'을 통해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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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밤이 좋아요.”
키이스의 말 한마디에, 에릭은 혼란을 느낀다. 밤이 좋다니? 그리고 담배를 피운다니?
아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잘 키우고 있다 생각했는데 키이스의 단 한마디에 그의 마음 속엔 불안의 씨앗이 싹텄다. 경찰이 찾아와 키이스에 대해 심문할 때, 집으로 돌아오면 입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고, 정기적으로 가족 주치의에게 끌고가서 약물 검사를 해온 아빠라고 말하고 싶었다, 라고 생각한 에릭의 마음은 낮은 자존감과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몸만 커버린 어린 에릭 의 불안한 어린 시절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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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나약하다. 번역가가 말미에서 제대로 언급했다. 소심하고, 나약하며, 어리석다. 찌질하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삶의 안정이 유지되기만을 바라고, 어떤 것에도 호쾌하게 맞서지 못하면서 절망할 준비만 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내가 소설 ' 붉은 낙엽' 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나는 소심하고, 어리석으며, 항상 지금의 삶, 하루 하루의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굳센 마음으로 맞설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도 구멍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우울과 직면하면, 나는 다시 나에게 주어진 삶을, 가끔은, 가끔은,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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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 더 대화를 해본다면, 그러니까 진중한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에릭과 같은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생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알기에 아직 어린 나이임을 생각한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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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의 왜곡,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잉걸불
소설 ' 붉은 낙엽'은 사건으로 인해 가족이 어디까지 낙하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것이 지인, 친구가 아니라 혈육이어도 마찬가지다. 피로 얽혔거나 상관없이 인간의 한계는 그가 가진 생으로서 극명히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걸 공포/추리소설 작가 토머스 H. 쿡이 제대로 알려주었다.
소설 ' 붉은 낙엽' 이 잉걸불로 보이는 건 인간의 작디 작은 나약함일까. 아니면, 독자들에게 앞으로의 삶은 좀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의 잉걸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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