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환자가 가장 먼저다. 하지만 어떤 초임 의사도 경험 부족에 따른 미숙함 때문에 가혹하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질책과 조롱은 그들을 비뚤어지게 해서 수련의 초반부터 죽음과 죽어 감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 오리어던 부인을 예로 들어 보자. 그간의 경험으로 지금은 척 보면 그녀가 죽어 간다는 것도, 어떤 치료를 시도한들 곧 죽을 거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때 아버지가 내 옆에 있었더라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처럼 경험이 쌓였더라면, 임박한 죽음의 신호를 바로 감지하고 치료보다는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을 완화해 주는 데 집중했을 것이다. - 책 중에서.
우리의 심장이 멈추는 이유는 우리가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중에서
이 책을 선뜻 왜 읽게 되었는지는 알 겨를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눌러 책장에 넣었던 것 같고, 책을 읽으려 '밀리의서재'를 열었을때 이미 나는 약 50페이지를 읽은 상황이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숭고하고도 심오한 주제로 나를 이끌었고 마지막장을 덮고 난 후 일상을 대하는 스스로의 자세가 달라졌음은 의심할 길이 없다.
굳이 모바일 어플로 책을 읽고 북마크를 했으면서도, 또 다시 읽으려면 읽을 수 있을텐데, 많은 북마크를 하나씩 타이핑 한걸 보면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그렇게 어둡지만도 않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던걸로 기억한다.
우리의 심장이 멈추는 이유는 우리가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중에서
앙고르 아니미Angor Animi’라는 증상에 주의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영혼의 불안을 뜻하는 라틴어로, 환자 스스로 곧 죽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느끼는 공포감을 말한다. 그때까지 앙고르 아니미를 접한 적은 손에 꼽았지만, 매번 오해의 소지가 없을 만큼 분명했다. 우드먼 씨도 맥박이 빨리 뛰고 혈압이 뚝 떨어지고 입술이 시퍼랬다. 심근 경색으로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말을 하는 그 순간에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의료인이나, 저자인 <레이첼 클라크>가 느낀 호스피스의 의사들은 이미 죽음의 시기가 결정된 상태로 오는 환자들을 보며 착찹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을테지만 어찌보면 반복적인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죽음의 이면 뿐만 아니라 죽음이 가져다주는 침묵, 그리고 인생의 소중함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도 아들처럼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날,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레이를 보면서 나는 사랑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 사람을 사랑한 만큼 아프다는 것. 팻이 레이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했던 만큼, 그가 느껴야 하는 고통과 비통함도 똑같이 크다는 것. 죽음과 관련된 이 연산에서, 팻은 사랑한 크기만큼의 아픔을 레이에게 치르게 했다. 이 말은 곧 한없이 아프게 했다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데이브를 건너다봤다. 그는 따끈한 차를 따라서 아버지에게 권하고 있었다. 먼 훗날, 데이브와 나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될 거라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죽음의 신호. 맥박이 적어지는 동시에 숨을 거칠게 쉬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죽음과 평안한 표정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앞에서의 죽음은 어떤 쪽에 힘을 쓸 수 있을까. 죽어가는 이를 보며 연신 눈물을 닦아내야하는 가족과 소중한 이들에게도 죽음 쉽지 않은 문제일테다.
새벽 동이 트기 직전, 간호사가 따뜻한 차를 한 잔 갖다 주었다. 간호사는 내게 성가시게 했다고 나무라기는커녕 따뜻한 말을 건넸다. “만약 내 어머니가 아프시면 당신 같은 사람한테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네요.” - 책 중에서 -
때로는 절망적 무력감에서 교훈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겐 너무나 사랑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당신의 삶을 빛나게 해 준 그 사람을 지키고 싶지만, 무력한 당신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 책 중에서 -
특히 응급실의 과중한 업무와 제약 속에서도 한 개인의 위기를 파악하고 풀어 가는 솜씨는 감탄을 자아냈다. 파비아나는 그를 금세 잊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예리한 감각과 따뜻한 배려를 마음에 깊이 새겼다. 아버지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 책 중에서 -
내 생각엔 너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무뎌질 때가 올 게다. 차갑게 변하고 싶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단다. 안 그러면 버틸 수가 없거든.”- 책 중에서 -
후기를 쓰면서도 심오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필력에 책의 느낌을 모두 살리기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숭고한 죽음 앞에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겠지만, 죽음을 마주한 자에게 혹은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고 어두운 주제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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