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이유/독서 그리고 책.

[삼성을 생각한다.] 묵시록(默示錄)

올라씨 Elena._. 2012. 2. 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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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생각한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 기업경제
지은이 김용철 (사회평론,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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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이미지는 이상욱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 
       

    한 편의 소설과도 같았다. 474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같은 현실을 감당해야 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아렸다. 석궁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교수의 모습을 그린 '부러진 화살'과의 동질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영화에 보이는 김교수의 모습과 김용철 변호사의 모습은 다른 점은 없었다. 이상하게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상하게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비리를 폭로하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분명 영화와 책에 나타난 그대로 그들 자신에게 끝없는 자괴감과 후회를 느꼈을 터였다. 자본주의라고는 하지만 이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재벌 세력에는 북한의 그것보다 너 심한 것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애덤스미스의 사상은 어디로 떠났는가. 누가 자연의 조화에 발을 달아주었나.

   어렸을 적, 아니 적어도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서 사회는 하나의 '정의'였다. 사회 그 자체가 사람을 구하는 정의로 통했으며,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곧 인정하게 됐다. 도덕적 해이를 지나치게, 기막히고 코까지 막히게 하는 이 사회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무덤덤해졌다. 그 사실이 날 더욱 어이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웬지 모를 두려움이 솟았다. 만약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이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삼성의 비리와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 조차 그들에게 걸려들 일이 아닌가. 과도기 시대에 우리의 부모들이 아무도 모르게 끌려가 영문도 모른채 물고문을 받았던 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스웠다. 책을 읽으며 이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편법으로 정치에 대한 권력을 소유한 채 세상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는, 조의금조차 얼만큼을 내야 하는지 모르는, 자신들이 무엇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바로 돈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면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돈이었다.

  나는 노조가 없는 기업은 싫다. 그래서 삼성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김 변호사의 말대로 언젠가 기업의 뼈대를 흔들게 될 것이다. 언제쯤, 삼성은 '노조와 함께 지내는 법'을 언제쯤 알게 될까. 언제쯤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기 위한 수업료를 과연 그들이 처리할 수 있을까. 삼성을 먹여살리는 것은 경영자와 임원들이 아닌, 어떠한 경영적인 지침에서도 자신의 역할에 고군분투한 직원들이 있었다. 삼성이 LCD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았을 때, 아산 탕정 공장에서는 (삼성의 국가적 차원의 기득권을 위해) 노동자들이 백혈병을 감수한 채로 노동을 취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처음 든 생각은 '나라도 그러겠다. 돈이 있는데 뭘 못하겠어.'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삼성의 구조본과 실의 입장에서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자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많이 달라진 견해다. 나도 저렇게 비자금을 모으고, 취하고, 즐기고, 내 취향대로 살 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돈' 문제는 있어왔고, '돈'을 향한 사람들의 집착을 저버리긴 힘들기 때문이다. 내 앞에 돈이 떨어진다면, 갑자기 돈을 취할 방법이 생긴다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나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회를 가던지, 삼성의 <행태>와 같은 일들은 벌어진다. 내 주변에서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도, 내가 모르는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대기업을 향한 막연한 존경심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기특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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