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무게/단편집

생산라인 노동자 G의 하루

올라씨 Elena._. 2012. 3. 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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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6시 30분. 이불 한 켠에 놓아진 핸드폰이 새삼스레 G의 잠을 깨운다. 맙소사. 드디어 꿈의 기쁨을 뒤로하고 일을 가야 한다. 순식간에 잠이 깬 G는 멍하니 깜깜한 천장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 이렇게 누워있으면 또 늦을 텐데. 요즘 시대에 시간 약속은 엄수인데 이렇게 늦장을 부리다간 안좋은 이미지가 생겨버리겠군. ' 그래도 G는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공장에 대한 두려움. 하루 종일 서서 같은 자세로 생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생각조차 못했다.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그까짓 8시간 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원한 공장이었다. 아, 그런데 이게 뭔가. 나는 단순히 생산을 위해 태어난 기계였단 말인가.

 

 

 

 

 

    서두르자. 서두르자. 시간이 넉넉치 않은데도 G는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느긋하게. 마치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우유에 콘푸라이트를 잽싸게 말아먹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 오산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겨우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20대 초반의 여성들도 보이고, 20 대 후반쯤 되었을 남자가 음악을 들으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G는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길 기도하며 눈을 감는다. 몸도 제가 불편한 것을 알았는지, 뒤척거린다. 그러다 보니 몇 군데 정류장을 지나치고 30분이 금새 지나가 공장에 봉고차가 들어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G는 대기실로 올라가 위생복을 갈아입고는 저 구석 어디엔가 의자에 등을 기대로 앉는다. 다른 봉고차가 들어왔는지 G가 앉자마자 아줌마들이 대기실에 들어선다.

 

    9시. 다섯 명 씩 줄을 맞춰 나란히 서고 파트를 나눠 본격적으로 일 할 준비를 한다.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적응시킬 준비를 하는데, 라인이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반장이 소리지른다. " 오늘은 빨리빨리 하라고 안할 테니까, 불량 안나오게 조심해서 일들 하세요. 자 ~ 거기. 라인 돌려. " 일을 시작한지 30분이나 지났을 까, 갑작스레 라인이 멈추고 반장이 화난 목소리로 외친다. "이렇게 불량이 많이 나오는데, 다시 검수하고 싶어요? 제대로들 안하면 오늘 집에 못가는 거에요. " 진정 기계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는 자괴감에 쌓여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가 오늘 하루가 끝나길 기도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G는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줌마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한국어가 아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려 하자, 중국어가 공중에 흩어진다. 그렇다. G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혼자 외로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시간 45분의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15분 간의 따뜻하고도 그리웠던 휴식시간 종이 울리자, 근무자들이 물밀듯이 대기실로 밀려 나온다.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떤 후 휴식 종료 종이 울리자 다시 점심먹기 전 한타임이 시작됐다. 딩동댕동. 12시 40분이 되자 점심시간의 벨이 울렸다. G는 혼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뒤늦게 어떤 아주머니가 G의 옆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주변인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G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원래 중국인들이 이렇게 많은가봐요. 그녀가 대답한다. 원래 여기는 파출부에서 일용직으로들 오는 거라 중국인, 몽골인들이 많아. 저 사람들한테는 민증이 없으니 증명할 종이 쪼가리도 내란 소리를 안하더라구. 그러면서 혼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가야금을 가르쳐. 내가 가야금을 가르치는 애기 엄마도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요즘에는 공장에 중국인, 몽골인들이 그렇게 많더라고. 베트남 사람들도 종종 보이고. 나는 우리 애기들한테 엄마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종종 나와서 공장에서 일을 하곤 해. 공장 라인 돌아가는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정말 짜증나다 못해 귀가 먹을 정도야. 아 참, 나 위염 있어서 찰밥 싸왔는데. 내 식판 갖다 버리지 말고 그냥 여기에 놔 둬.

    그녀는 그렇게 일어나 대기실로 들어가 자신이 싸왔다는 찰밥을 챙겨왔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먹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수다를 뒤로 하고, G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판을 반납하고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에 앉아 잠깐 숨을 돌리려나 했는데, 벌써 1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다시, 시끄러운 라인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오후 일과가 시작됐다. 중국인들이 수다가 그들이 생산 속도를 늦추고 있다. G는 마음으로 중국인들과 자신의 생산량을 비교했다. 한 개, 두 개, 한 박스, 두 박스, … G는 10박스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생산량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6시가 다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반장을 비롯해 담당자들이 속속히 근무자들의 자리에 합류했다. 그러면서 잠시 라인이 멈췄다. "이대로는 11시에도 집에 못가요. 빨리 빨리 해야 하는데 집에 가기 싫어요? 집에 가고 싶으면 빨리빨리 해요." 껌을 씹으며 작업복을 반만 걸친 사내가 근로자들 사이를 누비며 소리친다. 나를 쳐다보지 말고 일을 빨리 빨리 해요. 집에 가기 싫어? 그렇게 작업은 7시에 30분간의 저녁을 마치고 9시까지 계속됐다.

 

    웃긴 일이 하나 있었다. 저녁시간에 갑자기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방을 싸들고 집에 가겠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슨, 그들을 고용한 파출부 소장이 연장근무 수당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대기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언어가 넘실넘실 퍼지고 있었고,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고용인에게 전화를 해서 수당을 주라며 화풀이를 했다. 결국, 파출부 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의 인원을 빼되 새로운 인원을 넣어주겠다고 이상한 소리를 했으며 인사담당자는 누가 갑이고 을인지 생각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담당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연장 수당은 하청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계좌로 넣어주겠으니 잔업을 마저 하고 가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귓 등으로 담당자의 얘기를 들었고 대기실을 떠났다. 그렇게 열댓 명이 공장을 빠져나갔고, 남은 자리는 다시 회사원들의 차지가 되었다.

 

     11시에 끝나기는 어렵고, 밤샐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업무량은 9시가 되어 끝났으며 G는 드디어 일이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통근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일을 한터라 G의 어깨는 말을 듣지 않았으며,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접시에 반찬을 덜어 4명이 함께 먹으라는 주방장의 소리에 비위가 상해 식사를 거부했던 G의 뱃 속은 통근 버스 안에서 구토가 일었다.

그렇게 생산라인 노동자의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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