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바람이 불 때는 왜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이리도 세게 부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소일거리 마냥 흘러가는 생각이었을 뿐 크게 내 인생이나 삶에 있어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바람이 흘러가는 데로, 내 시간도 흘러가고 있었으니.
바람도 하늘도 내 삶에게 중요한 것은 없었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왜 날리느냐 하늘을 원망할 필요 없듯. 작가가 되면 밥벌이가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인데 왜 생활이 이토록 곤궁해진 것이냐. 13/142 P
그러다 어느 날, 하늘에서 투명하게 비치는 바람의 소리와 느낌조차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게 지금이고.
거기에 나는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다 손이 가게 된 것은 <단순 생활자>라는 제목이 턱-하고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워커홀릭이라는 고질병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데도 아직 발버둥 치고 있는 내 자신을 한심하게 보다가, 무엇인가 복잡한 일에 "단순히 생활하는" 작가의 흐름이, 그녀의 생활 패턴이 알고 싶어 구매한 책. <단순 생활자>이다.
유명 소설을 통해 알려진 황보름 작가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까.
평상시에 보내는 시간 속의 고민과, 고민에 부딪혀 무의미해 허무로 결론나는 나의 시간들이 아까웠는데, <단순 생활자>가 많은 위로를 주었다.
지금 이 시간도 버텨내고 있는 날 보면, 아마도 에세이가 특정 기간이나 번아웃이 온 시점에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도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에세이임에도, 좋은 글귀들이 많아 북마크로 정리해본다.
월급쟁이의 노동은 임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찌 됐건 척척 밥으로 환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14/142 P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끝까지 망가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나에겐 있다. 44/142 P
솔직함의 한계엔 늘 신경을 쓴다. 속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도 조금은 남겨두고, 디테일에 더 함을 주고 싶어도 결국은 힘을 뺀다. 그렇게 '나만 아는 나'를 내 안에 넘겨놓고 (중략) ~ 69/142 P
글을 묵혀두지 못하고 바로 독자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두려웠다. 글이 좋은지 안 좋은지 (중략) 110/142 P
내가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오면 나를 푹 쉬도록 허락한다.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한량처럼 며칠을 보내도록 한다. 131/ 142 P
리뷰를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많이 힘들었구나. 오늘은 쉬어도 돼.
오늘은 한량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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