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그녀의 소설은 매우 큰 호응과 국내 문학 시장에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교보문고에는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였고, 메인 페이지에는 그녀의 소설들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영화관에서 상영관을 독점한 마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한국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말이고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준 셈이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읽기가 꺼려졌다. 내가 가진 "한국에서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아닌, "혐오", "더러움", "아이에게 부끄러운"과 같은 키워드들로 댓글이 달려있는 책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내가 읽어보지도 않고, 사람들의 생각으로 가득한 "후기 창"을 보며 나도 짐짓 두려웠던 걸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채식주의자』 는 성적으로 가득한 소설이 아닌, 누군가의 희망과 절망을 기록하는 책이었어야 했다.
채식주의자,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튀지 않는 모습, 그러니까 가슴이 빵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키가 크지도 않으며 예쁘다고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성격과 외모 탓이었을까. 이 때문에 남편은 영혜와 결혼을 약속했다. 어느 날 갑차기 말 수가 없는 그녀에게 나타난 증상(!)은 "고깃덩이"가 싫어지는 "채식주의"였다.
꿈에서 그녀는, 그녀인지 모르지만 어떤 무엇인가가 핏덩이가 가득한 무언가를 먹었고 손에는 피가 가득 남아있었다. 꿈에서 만난, 그녀의 꿈 덕에, 그녀는 고기를 끊기로 다짐한다. 소주 반 병으로 밤에 자다가 요의가 생긴 남편이 새벽 4시, 냉장고 앞에서 만난 그녀의 "채식주의"를 만나게 된 시작점이다.
갑작스레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그녀(영혜)를 남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채식주의는 점점 심해져갔다. 끝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호통을 치며 양 팔이 잡힌 채 고기를 먹게 될 위험에 처한 영혜는, 결국 칼을 쥐어들고 스스로를 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몽고반점, 영혜의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다. 엄지손가락만 할까. 예술가이지만 뚜렷히 보여주는 결과물이 없었던 영혜의 언니 남편, 동서는 그녀와 한 날 밤을 보내게 된다. 그녀와 그 모두 몸에는 꽃으로 가득한 수채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그 것을 알게된 영혜의 언니는 결국 동생과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자 한다.
나무 불꽃, 끝내 영혜의 채식주의는 극한으로 달해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병원에서 튜브를 삽입해 먹이려 했던 미음은 실패로 끝났다. 언니의 마음 속에는 "영혜가 스스로를 해하던 날, 그녀를 막을 수 없었을까" 하는 의문만 남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영혜가 까르륵 하고 웃던 , 영혜가 아직 소녀였을 때의 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소한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영혜의 언니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 사건 날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반복적인 생각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은 계속 멈춰 있다. 영혜는, "죽으면 왜 안돼?" 라는 질문을 한다. 미처 답을 생각해내지 못한 언니의 모습을, 나는 미처 상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어느 날 정신병원에서 몸을 거꾸로 하고 물구나무 자세를 하고 있던 영혜가 언니에게 묻는다. 나무들이, 거꾸로 서있는 거야. 생각치도 못했어.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은 각기 다른 단편으로 이뤄져 있지만 영혜의 "채식주의" 선포로 인해 일어난 가족들의 입장과 생각을 보여주는 구성으로 이뤄진 하나의 장편 소설이다. 본능을 거스르는 채식, 그리고 땀 구멍에서 나는 고기의 냄새가 싫다며 관계를 거부하는 영혜, 모처럼 사장의 초대로 방문해 저녁만찬을 즐기는 자리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아내. 남편은 그때부터 정신을 놓았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영혜의 남편은 영혜의 언니에게 묻는다. "평생 저 모양으로, 매일같이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생계를 의탁하며 사는 아내를 형님이라면 견딜 수 있겠어요?"
30년을 넘게 살아오며 나는 언젠가 새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고 싶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 있었다. 까닭은 모르지만 심지가 곧게 땅에 박힌 채로 꿋꿋하게 서있는 나무의 줄기와 푸르른 잎사귀들에게서 남모를 위안을 얻었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들과 이어지는 관계로부터 지쳐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자연을 벗삼아 힐링하고 치유된 경험이 있었기에 "나무 불꽃"은 조금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죽으면 왜 안돼" 라는 영혜의 질문에 나도, 영혜의 언니와 같이, 답을 찾지 못했다. 우울증이 시작된 후에 한동안 먹었던 세로토닌 약은 언젠가는 효과가 있었지만, 또 다른 언젠가는 효과가 없었다. 정신과 약은 삶의 필수요건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필요악일 수도 있다. 정신병원에 갖힌 영혜의 사건,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언니와 (구)남편의 시각은 어쩌면 편협함에 쌓인, 동시에 이해해보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실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소의 껍질을 벗겨 무구질을 하고 가방을 만든다. 심지어 핸드폰 케이스도 만든다. 고기를 먹으면 육식인 사람에게 폭력성이 나올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어느 연구에서는 육식을 한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들보다 공격성이 더 높다고 발표한 결과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목적을 알기 위한 연구 결과 였을 뿐 그것이 인간의 삶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감을 칠한 채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더럽다"고 표현하는 건 보여지는 것만을 판단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몸에 칠한 물감으로 그려진 꽂들에서, 영혜는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몸이 그림판이 되고, 물감이 그림으로 그려져 인간이 자연이 되고 싶다는 소망. 지구를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떤 하나(소설에서는 육식, 정신병원)에 집착하는 모습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삶은 육식 하나로만 결정될 수 없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느껴야 할 그 어떤 경외감 같은 것들이 인간에게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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