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3. 단편 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작가들의 이야기
1950년대 영국에서 발생한 '키친(싱크대)리얼리즘" 을 의식해 만든 "월급사실주의"는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를 먹어살린다는 큰 주제를 가진, 작가들의 동인 모임이다. 소설가들의 모임명이 월급사실주의라는 직장노동자인 나에게는 꽤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 시대의 노동현장을 그대로 보여야 한다는 도덕적인 규칙에서 그 들(작가)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실소가 터져나왔다. 지독할 정도로 노동자가 겪는 하루를 소설에 녹아냄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월급사실주의"로 거듭났을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
노동자의 노동이란, 기획자의 말대로 "혹독하고 숭고한 일에 몸과 마음을 쏟는 일"임을, 8명의 작가는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눈도 덜 뜬 상태, 잠이 덜 깬 상태로 운전석에 앉아 라디오를 켜면 디제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 속 목소리에 나만 잠에서 덜 깬 느낌이 가득하다. 오늘도 활기찬 아침입니다. (남궁인)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몇 차례의 면접을 반복하여 거치고, 아나운서가 된 후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모습을 그린다.
피아노 (손원원) 속의 혜심은 교사다. 집에 아이들을 들여 가르치는 방문 교사라고나 할까. 그녀에게 불현듯 재정적 어려움이 닥치고 피아노를 팔기로 마음먹는다. 끝내 팔리지 않는 피아노를 폐기 처분 할 생각에 불쾌함이 솟구치지만 그녀의 제자인 준용 덕에 새로운 마음을 먹게 된다.
고급 복어 취급 음식점 등대 (이정연) 에 취업한 설희는 짠내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누명을 쓰고는 새롭게 취업한 곳이다. 정규직이 아닌 그녀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무시라도 하듯, 사회는 그녀에게 더 모멸감을 불어 넣는다. 삶은 쉽게 괜찮아 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사람 (임현석), 두 친구 (정아은), 쓸모있는 삶(최유안) 에 이어, 천현우 작가의 "빌런" 또한 노동자의 삶에서 빌런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가끔 호기롭게 반말을 찍찍 던지는 동료가 있지만, 그도 어느 날엔 궁핍하고 안쓰러운 면모가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노동자의 현주소니까.
식물적 관상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비건 주의에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민지는 식물을 팔며 음식을 껴넣어주는, 세계적 비건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입이 있다고 모두에게 표현할 자유가 있는게 아니라는 걸" 민지는 깨닫는다. 식물성 관상 (한은형)
노동자의 현실
인구의 대부분은 직장생활을 하며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이라도 할라치면, 벌려놓은 사업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 인간관계의 망이 촘촘한지, 그리고 돈은 어떻게 벌어서 사업 밑천으로 우겨 넣을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고도 많아 쉽게 벌리기도 어렵다.
단편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은 직장생활 혹은 사회를 구성하는 '나'라는 노동자가 비단 나 뿐만이 아님을, 나만 가지고 있는 고민과 모순덩어리가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줌으로써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주제를 던진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의 나도 노동자로서 존재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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