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e 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니? 라테? 카푸치노?' 와 같이 구체적인 답을 원하는 질문에는 '얼죽아죠' 라고 답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는 답을 하기 어렵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음에도 철학과 과학은 항상 나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도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를 읽게 된 이유도 그렇다.
작년에 사주를 보아서 그런지, "삶은 어차피 정해져 있어"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린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나만의 욕심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삶이 '바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교보문고에서 어떤 답이 맞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찾던 와중에 내 눈에 와닿은 책이 바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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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원제 ‘인코그니토Incognito’에서 드러나듯 ‘신분을 숨긴’ ‘익명의’ 범인, 즉 우리 무의식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뇌에 대한 무한한 탐구다. 우리의 모든 판단, 선택, 행동을 좌우하는 1.4킬로그램의 작은 머릿속 독재자가 설계한 세계가 펼쳐진다.
도서 소개글에도 적혀 있듯이 이 책은 '뇌'에 대한 지적 탐구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손과 머리가 바쁜 것 같은데 내 머리는, 아직 내 뇌는 멈춰있는 느낌이 많았다.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노화 탓인가 싶어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내 일에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면, 그건 내 무의식이 매우 열일.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내 무의식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거지..? 내 궁금증이 해소가 될 수 있을까.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는 여러 사례를 통해 한 인간의 무의식이 어떻게 발현되고 통제되는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눈의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뇌의 기능이 일부 소실된다면 뇌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눈으로 입력된 정보(사과, 혹은 배, 풍경과 같이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가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뇌에서 눈을 담당하는 부분의 훼손이 있으면 정상적인 정보가 입력되지 않는다. 뇌는 소실된,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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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는 행복했어요,
개구리가 재미로
다리가 움직이는 순서를 말해줄래?”라고 말하기 전에는.
머리가 너무나 복잡해져서
지네는 도랑에 괴롭게 누웠어요.
달리는 법을 알 수 없어서.
여기 지네의 이야기가 있다. 발이 많지만 항상 행복했던 지네는 질문을 하나 받는다.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순서를 말해달라는 개구리의 질문에 지네는 갑자기 머리가 멈추고, 괴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우스갯 소리로 책에 있는 이야기를 옮겨 담은 것이지만 요즘의 내가 이렇다. 나는 그냥 생각나는데로 했을 뿐이고 에너지를 크게 소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질문을 하자" 내 머리는 괴로워진다. 하지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곧 괴로워지는 형국으로 발전하고 이미 바닥을 쳐버린 에너지를 더욱 파고들어 내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단이 된 것이다.
책에 의하면, 일상의 행동에서 뇌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 무의식의 행동들은 다음과 같다.
자전거 타기, 신발 끈 묶기, 자판 치기,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주차하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쉽게 해내지만, 그 방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카페테리아에서 쟁반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피해 움직일 때 근육들이 완벽하게 시간을 맞춰 수축하고 이완하는 과정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그 행동을 해낸다.
병아리 감별사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암수를 구분해내는 초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보이는 행동 패턴 또한 뇌의 기능보다도 학습되어 육안으로 판단해 결정, 행동하는 패턴이 반복되어 학습됨으로써 뇌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병아리 감별사를 처음 접한 학습자에게는 암수 구별을 해내는 천부적인 능력이 없을지라도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스승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는 순간, 학습자의 눈(정확히는 뇌)은 병아리 암수를 구별하는데에 그 방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이후 상황이 익숙해지고 암수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되면 뇌는 휴식에 들어가고 본능적으로 구분해내기 시작하는데 이를 '육감'이라 한다. 뇌의 에너지를 쓰지 않은 채 학습된 것으로 암수를 구분해내기 때문에 육감이 만들어지고 조금씩 암수 구분 속도가 빨라지고 적응되는 비율 만큼 뇌를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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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데이비드 이글먼
-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
- 출판일
- 2024.11.22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궁금해 할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나의 경우 이 책이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궁금한 부분들은 아래와 같았다.
질문1. 왜 똑같이 일을 하는데 피곤한 걸까
답. 반복적인 패턴이 피곤함을 줄이지는 않는다. 반사적으로 진행하는 것들에서 이미 에너지를 충분히 소화했다.
질문2. 뇌는 왜 멈춰있는 느낌일까.
답. 반복적인 패턴으로 인해 뇌는 생존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일들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로 인해 뇌는 활동하지 않고 육체적 피로만 생길 수 있다.
질문3. 자꾸 피곤한 이유는?
답. 질문 1에 대한 답과 같다.
질문4. 반복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뇌를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답.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뇌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할 수 있는 생각과 할 수 없는 생각은 물론 가장 깊은 본능까지도 회로에 아주 깊숙이 각인되어 있으므로 본능이나 육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계속 머리를 굴려 사고해야 한다.
" 본능은 우리가 살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자동화된 행동(타이핑, 자전거 타기, 테니스 경기에서 서브 넣기)과 다르다."
질문5. 유난히 왜 사과는 맛있다고 느껴지는가.
답. " 우리가 사과, 달걀, 감자를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을 구성하는 분자의 형태가 선천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당분과 단백질을 훌륭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뇌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정말 맛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성분을 충분하고 훌륭하게 품고 있다는 사실을 뇌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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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도서 말미에 얘기한다. 어떠한 사고가 났을 때 그것이 의도적이라면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 반대 상황이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영화 <잠>에서와 같이 수면 중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수면 속에서 (기억하지 못한) 각성한 상태로서 사고가 났다면 이는 범죄로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증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실제로 무죄 혹은 동일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장하거나 의학적 치료를 권고하는 방향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적절한 대체제로서 보여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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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생존에 문제가 있다면 뇌는 활동할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뇌라는 존재는 지속적으로 연구가 필요하다는 걸, 작가는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다. 뇌라는 건 참으로 신기한 존재다. 나에게 있어서 육체적 피곤함을 바꿀 존재는 나 밖에 없다는 걸, 나의 생각과 행동밖에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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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상깊은 책 속의 구절을 마크해놓았다.
1. 불각증에서 중요한 점은 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당황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뇌는 예전 같지 않은 몸과 관련해서 조리 있는 설명을 만들어내려고 계속 이야기를 날조한다.
2. 그래도 그런 이야기와 어긋나는 증거와 맞닥뜨리면 사람들이 문제를 깨달아야 하는 것 아닌가? 환자가 손을 움직이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실 아닌가. 박수를 치고 싶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시스템에 알리는 기능은 뇌의 특정한 영역, 특히 전측 대상회 피질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증거와 어긋나는 현상을 감시하는 이런 영역들 때문에,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생각 중 한쪽이 승리를 거두게 되고, 이 생각들을 조리 있게 이어주는 이야기나 한쪽을 무시해버리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3. (중략) 이럴 때 뇌는 에너지를 미친 듯이 소비한다. 그러나 게임 실력이 점점 좋아지면, 뇌 활동이 줄어든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과제를 수행 중인 누군가의 뇌에서 활동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과거에 열심히 노력해서 해당 프로그램을 뇌 회로에 각인시켰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의식은 학습의 첫 단계에 불려 나왔다가, 학습 내용이 시스템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 게임에서 배제된다. 간단한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이 자동차 운전, 말하기, 신발끈 묶기를 위한 복잡한 손가락 동작처럼 무의식적인 절차가 된다. 이것이 숨은 서브루틴이다. 이 서브루틴을 작성하는 데 사용된, 해석할 수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단백질과 신경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서브루틴은 다시 불려 나올 때까지 (어떤 때는 무려 수십 년씩이나) 숨어서 잠복하고 있다.
4. 입력-출력 서브루틴이 어지럽게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일수록, 의식이 있다는 증거가 적다. 여러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만족을 뒤로 미루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의식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5. 어렸을 때 나는 지금 이 시기쯤 되면 로봇이 음식도 직접 가져다주고, 빨래도 해주고, 우리와 대화도 하는 세상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분야에서 뭔가가 잘못되는 바람에,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로봇이라고는 혼자 방향을 찾아갈 수 있지만 살짝 지능이 떨어지는 로봇청소기뿐이다.
인공지능 연구가 왜 발목을 붙잡혔을까? 답은 분명하다. 지능 그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 자연은 수십억 년 동안 몇조 번이나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6. 정신 사회의 구성원들이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투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의식에 관한 논의에서 이 점이 빠질 때가 많은데, 사람들은 보통 매일, 매 순간 자신이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이 잘 읽힐 때가 있는가 하면, 자꾸 다른 생각이 날 때도 있다. 필요한 말이 딱딱 생각날 때가 있는가 하면, 혀가 꼬일 때도 있다. 고루하게 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일단 행동부터 하게 되는 날도 있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수필가 미셸 드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차이만큼,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의 차이도 크다.”
7. (중략) 즉 우리 행동이라는 배를 우리 자신이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만큼 조종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과 이 문제를 연결하고 싶다. 사람의 됨됨이는 의식이 접근할 수 있는 수면보다 훨씬 아래에 존재하며, 세세한 부분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까지 (중략)
8. 2007년 6월 말, 스테로이드 분노라고 불리는 분노 발작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온 벤와는 아들과 아내를 죽인 뒤, 자신이 사용하던 헬스 기계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감정상태를 제어하는 호르몬이라는 생물학적 요인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당초 그 호르몬을 복용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그 자신이기 때문에 더 많은 비난을 받아야 할 것 같다.
9. 가혹한 처벌을 생각해보자. 사회로 돌아오려는 죄수의 의욕을 꺾을 목적이라면, 이 처벌은 적절치 않다. 그 목적에 맞춰 뇌의 가소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조건화로 행동변화를 일으켜 죄수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낼 희망이 있다면, 처벌이 적절하다. 처벌을 통해 유용하게 변화할 가망이 없고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는 반드시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10. 다섯 장에서 우리는 고삐를 쥔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행동, 동기, 신념을 선택하거나 설명할 능력이 사람에게 별로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를 거치며 진화와 경험으로 형성된 무의식적인 뇌가 방향타를 쥐고 있음을 (중략)
11. 우주가 이렇게 광대할 줄을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듯이, 우리 자신이 이렇게 대단할 줄을 직관과 성찰로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내면 우주의 광대함을 처음으로 언뜻 목격하는 중이다.
12. 나’ 대신 ‘우리’를 자주 사용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량의 지식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책이 항상 그렇듯이, 이 책도 수백 년 동안 활약한 수천 명의 과학자 및 역사가와의 합작품이다. 둘째, 책을 읽는 경험이 독자와 필자 사이의 적극적인 협업이 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 뇌는 광대하고, 복잡하고, 자꾸 변하는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부품들에 거의 접근하지 못한다. 이 책은 몇 년 동안 여러 명의 다른 사람 손에서 집필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데이비드 이글먼이었으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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