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이유/댕댕이와의 동행

유기견 임시 보호, 그리고 내 인생의 변화와 시작.

올라씨 Elena._. 2022. 11. 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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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임시 보호, 그리고 내 인생의 변화와 시작.

"너무 고립되어 있었다. 일에 지나치게 몰입했던 탓일까. 매일 스스로를 다그치고 풀어 주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다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욕심쟁이 같았다. 하지만 삶이든 생각이든 바꿀만한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 <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 중에서. **

나는 일처리가 매우 꼼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였는데 한 수 앞을 내다보는게 아니라 두 수 앞을 내다 보았다. 상사는 그렇게 일하는 내 모습이 답답해보였는지 한숨을 푹푹 쉬었고, 어떤 사람은 꼼꼼한 일처리가 마음에 든다며 칭찬했다. 아주 극과 극이었다.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던 나는 모든 일을 그렇게 행했고 결과는 쓰라렸다. 누가 짊어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 어깨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봇짐들로 무거웠다. 그렇게 받은 봇짐은 내 어깨를 짓눌러 몸과 마음이 성한 날이 없었다. 걷는 것도 싫었고, 사람과 얘기하는 것도 싫었으며, 티비를 보는 것, 핸드폰 게임을 뒤적거리며 캐릭터를 키우는 재미도 없었다. 내 이번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씻지도 않은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있는 나에게, 가족이 방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임시보호, 한번 해보자" 쉽게 던진 말 한마디였을 수 있는데, 오랜 기간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그녀가 한 마디를 지나가듯 툭 던지자, 내 마음에 불길이 치솟았다. 속전속결로 임시보호할 강아지를 찾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 가도 내 마음에 다가오는 아이가 없었다. 이상했다. 이렇게 임시보호가 어려웠나.

일년이 가는 듯 14일이 지났다. 엄마견, 아빠견과 함께 발견된 5 식구. 야산에서였다. 유기견으로 발견된 부모견은 매우 아팠고, 아가들은 너무 순하게 보여서 마음이 혹- 하고 툭 앉았다. 그리고 메세지를 보냈다.

"임시보호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임보는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내가 원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다른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집으로 오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임보인데 생김새가 중요한가. 남아인지, 여아인지가 중요했을까. 임시보호니까 쉽게 생각하자. 라고 결론내렸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며, 이름을 지어주었고(이름을 지어준게 먼저다), 나는 14일만에 입양을 결정했다. 14일의 인스타 수색 기간. 임보를 결정한 후 14일간 유기견과의 임시 (보호) 생활에서 입양을 결정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쉬운 일도 아니었다. 임보를 하는 중에 쓰는 돈이 입양을 해서 키우는 것보다 더 많이 든다는 얘기. 그리고 유기견으로 발견되었을 때는 발견되지 않았던 아픔이 발견될 수도 있다는 얘기, 애인 없는걸 강아지로 대체한다는 얘기, 새끼 낳아서 잘 키울 생각 하지 않고 강아지를 데려와 키운다는 얘기, 똥 싸는거 어떻게 해결할지, 냄새는 어떻게 제거할지, 개 아프면 돈이 돈대로 나간다는데 모아둔 돈은 있냐는 얘기.. 듣고 싶지 않은 말 투성이었다.


어떤 이력도 찾을 수 없지만, 아마도 그래서 더욱 더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졌을 그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본 것 같다. 인생을 포기한 듯한 눈빛과 어쩔 수 없어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입양을 굳게 결심했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내 가족이 되고, 내 보살핌을 받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강아지의 주인이 아니라, 강아지가 내 주인일지도. "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 배변패드를 치우고, 밥을 먹이고, 귀에 연고를 바르고, 빗질을 하며 몸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산책을 나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시원하게 본 응아를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출근 준비를 한다. 내 뒤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나의 관심을 오로지 차지하는 아가가 사랑스러워서, 집에 달아놓은 CCTV를 보며 계속 미안하기만 하다. 낮에도 놀아줘야 하는데, 돈벌러 나오니 놀아줄 수가 없어서. 혼자 둬서.


반려견이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내 하루는 달라졌다. 하루 걸음 수가 2배 가까이 늘었고, 바깥 바람을 더욱 자주 쐬게 됐다. 피곤하다고 집에 쓰러져 내 인생을 한탄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피곤을 줄여볼까 생각하게 됐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이상, 일에 내 스스로를 옮아메지 않게 되었다. 일로 내 인생을 인정받기보다 내 하루의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하루는 소중하니까.

누군가가 말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쓰레기를 던지면, 나는 그 쓰레기를 가지고 화낼 것이 아니라 갖다 버려야 한다고. 쓰레기는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낸다. 내일이 오던 말던, 나에게 쓰레기를 던지던 말던, 어차피 받은 쓰레기는 내 것이 아니므로.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를 위해. 오로지 그거 하나만 봐도 너무나 행복한 하루다. 그리고, 조금은 불편한 감정도 계속 연습*을 하기로 했다. 지금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 , **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홍수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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