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무게/우울증

[에세이] 보안근무에 대한 환상

올라씨 Elena._. 2012. 3. 3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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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다른 꿈들을 잠시 갖기도 했지만, 사람이 잘못한 무엇인가를 고치게끔 노력하는 경찰관의 일반적인 모습이 경찰에 대한 로망으로 부풀었었다. 하지만 이룰 수 없었다. 단지 꿈을 가진 것만으로 그것이 이뤄지는 게 아니므로 . 그런 와중에 G는 휴학을 하게 되었고, 자취를 하면서 놀고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국가의 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에 관한 생각도 잊은채 공대로 진학한 후였기에 그 뜻은 이미 먼나라로 떠났을 거라고 믿은채 잊고 살았던 지난 6년. 가끔 생각은 났었지만 생각만 했다. 아, 잡소리가 길었다. 단지 G는 경찰이 될 정도로 능력이 되지 않는 자신을 한탄하고자 했던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고 자취생활비용이라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하릴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흐리멍텅한 눈으로 알바 사이트를 찾았다. 마우스가 미안해질 정도로 의미없는 마우스질을 계속 하던 G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트 보안. 대형마트 입구에서 고객응대를 한다고 했지만, 상품을 훔치는 사람을 잡는, 마트내의 경찰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아 이거다. 라고 생각한 그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지원" 버튼을 눌렀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고, 이튿날 면접을 보러 갔다.



     근무자가 없어서인지 근무에 바로 투입되었다. 교육은 바로 진행되었고 선임이 교육을 시켜줬고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손님인 자신을 기억해 줘서 고맙다며 음료를 건내는 분도 있었다. 근무 첫 달. 실적이 달성되었고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아 하청업체임에도 불구하고 마트 점장에게 포인트 카드 또한 받았다. 업무에 투입된지 얼마되지도 않은 놈이 점장에게 포인트카드를 받는 게 질투가 났는지, 기존 직원 몇몇은 무뚝뚝하게 대하는 날이 점차 늘어만 갔다. 

     어느 날, 매장입구에 쓰러져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저 멀리서 G가 쓰러지는 것을 본 직원이 달려와 G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라 하고 있었다. 잠시후, 보안실에서 카메라를 보고있던 직원들도 달려왔다. 부축을 받으며 상황실로 내려간 G는 자신이 아침에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구토를 할 것 같은 상태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것.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이 일 또한 질린 듯 보였다. 상황실 근무자들이 긴급 투입되고 G는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한 탈진. 그것이 G가 받은 진단명이었다. 닝겔을 맞으며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나친 기대 때문이었다. 출근을 시작한 9월에 바로 실적을 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보안업계의 열악한 근무환경상 근무자가 자주 바뀌었고, 새롭게 들어오는 직원들은 기존 근무자들이 교육을 시켜야 했다. 근무를 시작한지 2주만에 신입을 교육시키면서 하루하루가 눈코 뜰새없이 지나곤 했다. 그렇게 시작한 교육에 실적까지 쌓이면서 팀장은 신입교육은 모두 G에게 맡겼다. 목소리가 가라앉은 일도 잦았고 팀장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져가는데 점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 그렇게 한 번을 쓰러지고 나니, 점차 회사가 싫어졌다. 결코 근무에 비해 적은 월급 때문이 아니었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서있는 근무는 그를 사람이 아닌 허수아비로 만드는 듯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무전기로 서로의 상황을 묻던 찰나에 급박하게 마트 안을 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트 내부에서 뛰어다닐 경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에 지양하는 부분이지만, 어쩔수 없었다. 흉기를 들고 도망치는 자를 잡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G는 달렸다. 일단 달려서 현장을 확보하라는 팀장의 무선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잡혔지만 G는 무빙워크에서 미끄러졌다. 허리는 자기를 좀 알아봐달라며 아우성을 질렀고 병원을 찾았다.
    

    새우 자세로 등을 굽혀 치료를 받은 허리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반복되는 통증에 병원을 지속적으로 찾아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팀장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원을 자주 찾는 것은 검도를 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볼때 양약에 건강을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앞으로는 가지 말라고까지 했다. 그런 핀잔을 들으며 이제까지 이 한 몸 바쳐 열의를 보이며 최선을 다해 일했던 G는 회의를 느꼈다. 하지만 보안 업무는 재미있었다. 이따금씩 경찰과 협동하는 일들도 재미있었으며, 신입자들을 교육시키는 것 또한 적성에 맞는지 그들은 G를 잘 따르곤 했다. 근무자세와 태도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중졸, 고졸이 상대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보안팀에서 이탈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건 견딜만 했다. 성실히 근무하는 자들이 남았으니 말이다.


    허나 아무리 노력한 들 한 번 떨어진 정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G는 그만두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는지 팀장은 그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만류했다. 귀가 얇은 G는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그들을 말을 믿고 한 달을 더 일했다. 그 사이에 팀장도 다른 곳으로 간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G! 네가 그만두지 않는다면 나도 여기서 계속 일을 할거야. 외부인들의 말은 듣지마. 내가 안간다면 안가는 거야." 라고 그는 말했었다.

     보안팀장은 신혼이었음에도 지방근무 배정을 받아서 와이프와 떨어져 지내야 했는데, 그 결과 와이프의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소문이 바람을 타고 사람들에게 흘러들었다. 그 소문이 마트 안에 만연해진 뒤로, 보안팀장은 보안실 밖으로 나가길 꺼렸으며, 마트 직원들에게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았다. 뜬금없이 G는 그만둬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그 곳을 떠났다.

     보안 일을 그만두고 얼마후, 보안팀장이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무에게도 이동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의 거짓말이 이제까지 그를 향해 쌓였던 신뢰를 단번에 무너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G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진작에 그만 둔 자신의 결정에 만족했다. ( BlackBerry® 에서 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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