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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날들> 에 취한 하루.

올라씨 Elena._. 2023. 12.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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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날들>   

  2020년 뮤지컬을 처음 경험한 후에 화려한 음악으로 연출된 새로운 문화를 접했고 진기한 카타시스를 경험한 덕에 일종의 뮤지컬 홀릭이 되었다. 그래서 매년 <그날들>을 봐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볼 수 없었던 핑계를 들어보자면, 故김광석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한 새로운 창작 뮤지컬이라는 광고 카피 때문이었다. 노래 자체로 좋은데 뮤지컬의 특색을 살려 편곡했다는 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는 나는, 입맛에 맞도록 새로운 조미료를 뿌리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연의 모든 것 - 플레이DB

 

www.playdb.co.kr

 

  인생을 고스란이 녹여낸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이었고, 다소 어둡고 무거운 노래이고 감정을 울리는 가사와 선율에 맘이 동했던 탓이다. 울적할 때면 찾는 그의 노래가 내 인생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서 뮤지컬의 화려한 안무와 음악으로 가려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선뜻 예매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기억하고 있는 것에 조미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뮤지컬을 찾아보다 수원에서 하는 기념 공연을 알게 됐다. 집에서도 가깝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로 가득찬 캐스팅에 홀린 듯이 예매를 하고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공연정보

뮤지컬 <그날들> 10주년 기념 공원 - 수원

 

 

 

 

2023년 11월 25일 (토) 오후 7시

출연 : 유준상, 오종혁, 최서연, 고창석, 김보정, 김산호, 박정표, 이정화, 이자영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VIP석 B구역

 

 

 

 

뮤지컬 그날들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뮤지컬이다. 故 김광석 노래들로 꾸며져 뮤지컬에 맞게 편곡되었고 '쥬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불린다. 한국과 중국의 수교를 둘러싸고 항상 1위였던 '무영'과 2위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정학'이 뮤지컬의 중심이다. 

 

  이번 10주년 기념에서는 2013년 초연시 '정학 역' 유준상 배우가 열연했는데, 이후에도 10년동안 자리를 지켜왔고, 마찬가지로 '무영'의 역할 또한 오종혁 배우가 맡았다.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정학과 무영은, 이유도 모른채 국가가 시키는데로 어떤 여자를 보호하게 된다. 말이 보호지 집 앞에서 감시하는 역할이다. 

 

  운영관 역할을 맞은 고창석 배우는 2020년부터 뮤지컬 <그날들>에 합류했다. 청와대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대식과 상구 역할에는 김산호, 박정표 배우가 함께했다.

 

 

 

소감

 

  뮤지컬 <그 날들>은 무영과 정학이 경호해야 했던 그 여자의 신분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어떤 남자의 이야기다. 동시에 무영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던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연이라고 부르지만, 극의 재미를 배가시켜준 대식과 상구의 역할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고 아역 배우들의 악기 연주소리도 뮤지컬의 완성도를 매우 높였다.  

 

  무엇인가에 소금, 후추를 뿌리면 원래 가지고 있던 맛은 사라진다. 누군가의 입맛에는 맞을지 몰라도 음식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맛을 느낄 기회는 없어진다. <그날들>을 보기 전에 음악의 결이 사라질까 걱정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나의 뮤지컬 선택 기준을 되돌아보게 하는 극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에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스토리 구성과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고 그 안에서 보여지는 故김광석의 노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특히 2막의 시작에서 운영관이 노래하는 <부치지 않은 편지>는 내 최애곡이 되어서 틈만 나면 듣고 있다. 원곡이 주는 느낌을 크게 받지 못했는데 극에서의 고창석 배우가 우산을 들고 부르는 이 노래는 원곡이 주는 울림에 그의 목소리가 덧대어져 노래의 깊은 참 맛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고창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유튜브로 찾아봤는데, 안타깝게도 나오지 않아서 그날들을 다시 보러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베일에 쌓인 그녀를 지키는 경호관들의 이야기는 다소 우울하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리기도 했지만, 갑작스레 그녀가 사라지는 스토리와 정학의 딸이 방황하는 이야기 또한 활기차지는 않다. 하지만 정학을 연기한 유준상의 연기는 극의 우울함을 없애주고, 정학으로 오래 지내서 그런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가수의 본업을 종혁이 '무영'으로의 역할을 잘 보여주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두 남자의 케미란.

 

  내년에도 또 했으면 좋겠다. 몰래 보러 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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