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이유/독서 그리고 책.

[스키너의 마지막강의] 스물 여덟에 읽는 심리학자의 노년론.

올라씨 Elena._. 2014. 7.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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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책을 잘 못 선택했구나.' 싶었다. 마지막 강의라고 해서 마지막 잎새와 같은 느낌을 주는 감동적인 책일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오마이갓. 노년론에 대한 책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의 노년. 할머니가 되어 꾸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벗삼아 마실을 다니는 내 모습은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근데 여유를 배우게 되다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다니.

 

 

 

 

언어의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구촌, 아니 대한민국에서 노년층이 서있을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영화 '신의 한수'에서 장님이면서도 바둑의 진기한 능력을 보여준 주님을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들의 놀이터. 지혜를 얻을 만한 노년층은 늘어만 가는데 그들은 먼 거리를 나오면서도 지혜를 나눌만한 곳이 없다. 없어지고 있다.

 

어렸을 적 들었던 할머니의 옛 이야기, 허리 한 번 굽히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만든 쌀로 한가득 밥그릇을 채우던 외할머니의 정겨운 이야기들을 듣고 추억에 잠기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세상이 고속화, 고속화, 빠름 빠름, 빠름을 외쳐댄 탓이다.

 

달리는 차의 전방을 지켜보지 않는 데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나면 그게 얼마나 쉽고 차창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우며, 당신과 당신 친구가 얼마나 즐거운 여행을 했는지를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168페이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가지게 되는 경험들을 기억하고, 훗날 시간이 흘러 차창 밖 풍경을 보며 기억을 곱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을 산 것일까' 하는 마음에, 일상은 비록 바쁘지만 자꾸만 여유를 찾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은 자연스럽게 잡지 않아도 흘러간다.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하고, 어른이 되면 실컷 여행을 다니겠다고 했던 다짐도 막상 어른이 되니 쉽게 지켜지지 않게 된다. 사회에 찌들었다고들 흔히 표현하는데, 그 찌든 세상이 주름이 되어 나타나듯 나이를 먹을 수록 여유를 잊고 사는 건 젊든 나이가 많든 똑같은 것 같다.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 를 읽으면서 여유를 되찾고자 했다. 처음에는 의아하던 나의 선택이,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 여유가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지혜를 배울 수 없다면, 내가 가질 수 있는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는 것. 빠름을 외쳐대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다.

 

 

 

 

"만일 노인이 된 느낌이 어떤가를 알고 싶다면, 먼지 낀 안경을 쓰고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뒤 커다랗고 무거운 신을 신고 장갑을 낀 채 정상적으로 하루를 보내보라. (56페이지, 중략), 마치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한 뒤에야 기억해 낸 어떤 사람의 이름처럼, 생각들은 분명히 머릿속 어딘가에 떠돌고 있는데 쉽사리 다가오지는 않는다. 생각할 태세를 갖추는 것은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천천히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느리다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특히 노인들은 시간이 여유롭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 신중한 속도로 생각하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바람직하다. 102페이지.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

B. F 스키너 * 마거릿 E. 본 지음

이시형 평역

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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