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이유/문화(영화, 뮤지컬, 전시 등)

더 늦기 전에, 일상 속의 '완벽한 타인'

올라씨 Elena._. 2018. 11.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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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들이를 위해 모인 예진&석호네 집(김지수, 조진웅 분)에서 저녁을 먹으며 시작된 재밌는 핸드폰 게임. <완벽한 타인>이 개봉해 문화의 날인 지난 10월 31일 관람했다.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문자나 오면 읽어주고 전화가 오면 스피커 폰으로 대화를 엿듣는 즐거운 영화였다. 

  2016년 이탈리아 영화 <퍼팩트 스트레인저Perfetti sconosciuti>를 리메이크 한 <완벽한 타인>은 원작의 기대를 충실히 반영하여 한국적 스타일로 재해석한 블랙 코미디다.   <완벽한 타인>은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감에 있어서 내가 가진 나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걸, 아니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 100% 영화였다. 

  "사람의 본성은 월식과도 같아서 잠깐은 지워져도 사라지진 않는다." 와 같은 영화 속 말처럼 쉽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고자 노력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전부를 상대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를 구할 수도 없기에 본성은 고유한 그 무엇이다. 

우리 게임 한 번 해볼까?

다들 핸드폰 올려봐

저녁 먹는 동안 오는 모든 걸 공유하는거야.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쯤 나는 극심한 심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직면했을때의 좌절감은 쉽사리 이겨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 아팠다. 쉽게 나아지지 않는 기분과 마음을 가진 채로, 늦은 퇴근 후 상심한 나를 이끌고 본 이 영화는 나에게 오아시스 속 샘물 같았다. 

  스트레스를 받아 극심한 두통에 휩쌓여 하루 24시간을 꼬박 고통 속에서 보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이상하리만치 불쾌한 두통과 마음의 상처로 스스로를 견뎌내야 하는 힘듦 속에서 이 영화는 큰 교훈을 주었다. 오로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고, '누군가가 알지 않아도 될 이야기'가 있으며, 굳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누군가가 알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하여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원했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생긴 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 갖혀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내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그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게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래서 큰 상처를 이겨낼 수 있도록 내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었던거다. 이제 아파하지 말라고.

  쓸데없는 이기심과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온 이제까지의 시간들이 아깝지는 않다. 그러한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테니까. 새로운 시작이 내 앞에 서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니까.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아니라. 


  아, 내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길이 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굳이 알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 알아야 할 것들은 자연스럽게 실타래가 풀리듯 풀리게 되어있다. 그 비밀을 내 스스로 풀어낼 이유는 없다. 결국 타인이기에. 

  

   어쩌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몰랐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극적 설정을 보여줌으로써 현실 속에서 타인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타인은 완벽할수록 서로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는 아이러니 속에 이 영화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누구에게나 솔직한 타인이 될 필요는 없다.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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