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무게/인간관계

10년 직장인으로 깨달은 것들. (feat. 힘든 직장인 생활)

올라씨 Elena._. 2023. 6. 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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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2주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꾸준히 쓰겠다고 다짐한지 한 3개월정도 되었을까. 일적으로도 바빴고 개인적으로도 피곤함이 극에 달해 미처 글을 쓰지 못했다. 짧은 글이라도 써야지 생각했었는데.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체력의 한계를 올해 들어 자주 체감하고 있다.  

  체력의 한계를 알게 해준건 강아지와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맞춰가야 하는 부분에서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역시나 회사일이었다.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12년 동안, 그러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건 '일'이었다. 첫 직장에서 지금의 업무를 하지는 않았으나(첫 직장에서의 내 업무는 '인사 쪼무래기"였다. 열심히 배워야 하는.)

  임금 체불로 인해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회사에는 수시로 조폭이나 대부업자들이 몰려들었다. 회사는 감당할 수 있는 부채를 넘어섰고 과도하게 임직원, 팀장 급 이상을 비롯한 임원들이 보증을 선 탓이었다. 가족회사라 한 사람의 일이 문제가 되자 너도 나도 문제가 되어 갑자기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6개월 동안 참느라 고생한 나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대표님과 면담을 했다. 아무래도 회사 사정이 어려운 것 같아서 퇴사를 하고자 합니다. 나중에 괜찮아지면 다시 불러주시겠어요? 하고. 그렇게 나는 전혀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12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내 스스로를 다 잡아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자고 다짐하고 있는데, 결코 쉽지가 않다. 잠깐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글로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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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헤헤거리고 웃지만, 기분이 좋지 않거나 체력적으로 힘들 때는 얼굴빛이 어두워져 누구나 알아채고 만다. 게다가 일이 많아 업무에 헥헥 거릴 때는 헤헤거리고 웃고 다니는데, 어떤 사람은 내 얼굴빛을 알아채고는 '힘들구나'라고 이해해주었지만 어떤 이는 '헤헤'거리는 나를 보고 기분이 좋은가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도 언젠가 말한 것 같은데, 내가 내 인생에서 큰 목표로 두는 것이 이 평정심이다.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하면 될 것을 나는 기분이 좋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조만간 또 나쁜 감정이 올라올 것이고 나는 다운되겠지 하는 생각 떄문이다.  어떤 상황이 오든 그건 내 탓이 아니었고, 내 탓이라면 반성하며 앞으로 조심하겠다 라고 얘기해 뒷탈 없이 업무를 처리했음에도 나는 항상 평정심을 잃고 조급거렸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한때는 피해망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심한 피해의식을 느꼈다. 누군가 소곤거리면 내 욕을 하는 것 같았고, 나를 부르면 내가 뭔가 잘 못한건지 혼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평정심은 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목표다. 내가 뭐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게끔 해주는 직장생활에서나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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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없는 열정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학생이라는 딱지를 땔 때까지 나는 부모님께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관심있어 시작한 피아노는  체르니 100을 떼지 못했고 엄마에게 졸라 산 노트는 마지막장을 덮지 못했다. 나의 노트는 항상 1/3지점까지만 빽빽하게 필기가 되어있었고 그 뒤는 아주 깨끗했다. 이 공책의 나머지 깨끗한 부분은 잘라서 엄마에게 메모지로 활용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없는 열정이 주는 허탈함을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함에 있어서 끈기있게 해보려고 노력중이다.  지금의 회사에서도 인내를 가지고, 이직하지 않은 채 3년이 꼬박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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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툼을 인정하는 것. 

  누구나 다 새로운 시작이 있고, 그 시작점에 서있는 사람은 모두 긴장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면서 설레임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내 스스로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강아지와 반려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익숙할거라는 보장은 없다. 언제든 새로운 날이 계속될 것이고 보다 더 빡센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그건 어린 강아지였을 때도 그랬고 사춘기에 접어든 강아지의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에 보내면서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훈련이 아닌 유치원의 목적상 결국은 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 밖에 없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나는 지금 서툴지만, 곧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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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게 아는게 아니다. 그리고 사람은, 알 수 없다. 

  12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생각은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에게 느끼는 오만함, 혹은 경솔함은 결국 내 업무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업무량이 과다하게 늘어났으며 회사에선 금전 손해를 보는 상황이 종종 생기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고 나에게 동일한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더욱 꼼꼼함과 치밀한 업무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가 말하는 것이 정말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건지 내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을 믿기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일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편한 방식이 되지 않을까. 

  아는 척 하지 않고, 알고 있어도 가끔은 모른척 하고, 겸손하게 매 순간을 보내자. 그들의 삶을 내가 알 수는 없으므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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